체 게바라의 두번째 연인 알레이다 마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 Ernesto Guevara de la Serna, 1928.6.14.~1967.10.9.)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가이다. 의사로 성장한 그는 카스트로를 도와 쿠바의 게릴라 지도자가 되었고 쿠바 혁명 이후 정치가로도 활동했다. 체는 두 번의 결혼을 했다. 두 여인 모두 혁명가이며 전투원이었다.
지난 편에서는 체 게바라의 첫 연인, 혁명전사 아내 힐다 가데아(Hilda Gadea)와의 짧은 기간 동안의 로맨스에 대해 알아보았고, 이번 편에서는 두 번째 연인 교사였던 혁명전사 알레이다 마치(Aleida March Torres)와의 사랑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체 게바라는 그가 생존했던 기간보다 더 오랜 기간,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유명해진 인물로, 게릴라 활동에 대한 군사 이론을 만들기도 하였고 기타 여러 저작을 펴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볼리비아에서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게릴라 활동 중에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대중에게 체 게바라는 혁명가로 널리 알려졌으며 사후 여러 대중 문화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체 게바라의 두 번째 연인, 알레이다 마치 토레스(Aleida March Torres, 1936.~)는 쿠바 혁명운동가로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군대의 일원이었다.
1958년 11월, 학교 교사이자 지하 활동가인 알레이다 마치(Aleida March)는 아르헨티나 혁명가인 체 게바라(Che Guevara)를 처음으로 만난다.

체는 쿠바에 있었으며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1926 ~ 2016) 가 풀겐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의 친미(親美) 독재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을 돕고 있었다.
체와 알레이다의 로맨스의 시작은 쿠바 혁명전쟁 중 에스캄브레이 산맥에서 첫 만남으로 시작된다.
이미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인 체는 쿠바 반군의 제8열군의 지도자였다.
알레이다가 반란군 제8열 진영에 부대원으로 배치받았을 때 전투를 해야 하는 게릴라부대에 어울리지 않게 외모를 갖추고 있는, 그녀는 아주 예쁘고 젊은 여성이었다.
체(Che)가 그녀와의 첫 만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기까지는 몇 년이 지나야 했다. 체는 알레이다를 보고 ‘작은 금발에 약간 통통한 선생님’으로 기억했다고 한다.
체는 그때 쿠바 중부침공을 주도하고 있었다. 알레이다는 명령을 따르는 다른 전투원과 같았지만 체의 전설적인 명성에 대해 익히 들어본 적이 있어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1. 체게바라의 두 번째 연인 알레이다 마치
혁명전쟁은 곧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며칠 후 알레이다는 여전히 엘 페드레이로 마을에서 자신이 전투원으로 게릴라 부대에 합류할 수 있다며 전투참가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연약해 보이는 그녀를 전투원으로 투입하지 않았다.
알레이다는 날이 갈수록 체의 대해 경외심이 줄어드는 대신 인간적인 존경심이 커져갔다. 그리고 그 존경심은 애정으로 변해갔다.
알레이다가 옆에서 지켜본 체(Che)는 매우 총명했고, 그가 이끄는 군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대원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받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풍겼다.
막바지 전투를 준비하면서 체는 이 긴장된 순간을 선택해 부대원들 앞에서 알레이다를 암시하는 시를 낭송했다.

당시 알레이다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체는 알레이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체의 시낭송을 들은 알레이다는 체가 자신을 지도자나 상사로서가 아닌 한 남자로서 알아주기를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알레이다는 체의 속 마음을 알고 그녀 또한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알레이다는 체의 개인 비서로 활동했고,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항상 체의 곁에 있게 되었다.
1958년 12월 28일, 수적으로 압도적인 반군이 여전히 산타클라라 시를 장악하기 위해 정부군과 싸우고 있었다.
해질녘 차안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알레이다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힐다 가데아와 결혼생활과 그의 딸 베아트리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체는 힐다와 함께한 시간들에서 많은 오해와 갈등에 대해서 말했고, 이 같은 일들로 체가 멕시코를 떠날 때 이미 힐다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체가 힐다에 대해 말하는 내용으로 봐서 알레이다는 더 이상 힐다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체가 알레이다에게 힐다와 헤어졌다고 말한 것은 알레이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말이었으며 사실이 아니었다. 힐다는 여전히 체를 사랑하고 있었고 다만 멀리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12월 29일 밤, 체와 알레이다는 고속도로를 따라 산책 아닌 산책을 나갔다. 막바지에 다다른 하바나를 탈환하기 위한 전투를 준비하기 위하여 고속도로를 조사하고 있었다. 체는 모든 것을 면밀히 조사했고 알레이다는 훌륭한 조수로서 그의 조사결과를 메모했다.
이윽고 1959년 1월 1일, 체의 게릴리 군대는 산타클라라를 점령했고 독재정권지도자인 바티스타 대통령은 하바나에서 도망쳤다. 승리군인 반군 지도자인 체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는 수도 하바나에 입성했다.
체는 산타클라라에 있을 때 차 안에서 알레이다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체는 많은 전투에서 알레이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몹시 두려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전히 알레이다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하바나 인근의 산타클라라라는 작고 하찮아 보이는 마을에서 체는 알레이다에 대한 사랑을 선언하며 고백한 것이다.
이때 알레이다는 지쳐서 반쯤 잠이 들었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고 한다. 알레이다는 서로의 나이차가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혼까지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었다고 했다.
체가 알레이다에게서 어떤 반응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체가 말한 것을 알아듣는 순간 알레이다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어쩌면 알레이다가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더 확실한 의사를 듣고 싶어 되물었고 체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확인시켰다.
체는 사랑을 고백할 최적의 순간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기대했던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에 조금 속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둘 간의 부자연스러움은 확실히 깨졌고 친밀해졌다.
힐다가 1월 쿠바에 온후 체는 힐다에게 알레이다의 존재를 알렸고 이혼에 합의했다. 정식 이혼은 5월에 이루어졌지만 둘의 결혼은 1959년 3월 23일에 이루어 졌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2일에는 라 카바냐(La Cabaña) 군사 요새에서 시민 행사와 함께 또한 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이후, 게바라와 알레이다는 하바나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해변 리조트 타라라로 신혼여행을 갔다. 이 부부는 카밀로(Camilo), 셀리아(Celia), 그리고 어네스토(Ernesto)라는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2. 체 게바라의 죽음과 알레이다 마치
알레이다는 에보케이션(Evocation)이라는 책을 썼다. 책의 내용은 체 게바라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과정과 그의 사망 후 네 명의 자녀를 키우는 경험을 다루고 있다.
2008년 영화 “Che”에서는 배우 커탈리나 모레노(Catalina Sandino Moreno)에 의해 그려졌고, 2005년 영화 “Che Guevara”에서는 폴라 가르세스(Paula Garcés)에 의해 연기되었다.

1967년 체 게바라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독재정권의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부상을 입은 포로로 잡혔다. 남미 국가들을 장악하는 데 골머리를 앓던 미국은 볼리비아 정부의 동의 요청에 체 게바라의 총살에 동의했다.
체 게바라는 1967년 10월 9일 마리오 테란이라는 볼리비아의 하사관의 손에 의해 사살되었다.
체 게바라를 사살 명령을 받아 집행한 마리오 테란은 6개월 후 자신의 집 4층에서 투신자살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