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체 게바라의 연인들(1/2), 힐다 가데아

혁명가 체 게바라의 연인들

혁명가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가이다. 의사로 성장한 그는 카스트로를 도와 쿠바의 게릴라 지도자가 되었고 쿠바 혁명 이후 정치가로도 활동했다. 체는 두 번의 결혼을 했다. 두 여인 모두 혁명가이며 전투원이었다. 힐다 가데아(Hilda Gadea)와 알레이다 마치( Aleida March Torres)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와 그의 연인들의 로맨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혁명가 체 게바라의 연인들(1/2), 힐다 가데아 1

체 게바라(Che Guevara, Ernesto Guevara de la Serna, 1928.6.14.~1967.10.9.)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이다. 체 게바라란 이름에서 체(che)는 스페인어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어이’ ‘이봐’ 정도의 의미를 지난 말로 체 게바라가 혁명에 뛰어들면서 스스로 이름을 이렇게 고쳤다고 한다.

체 게바라는 그가 생존했던 기간보다 더 오랜 기간,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유명해진 인물이다. 게릴라 활동에 대한 군사 이론을 만들기도 하였고 여러 저작을 펴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볼리비아에서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게릴라 활동 중에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대중에게 체 게바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사후 여러 대중 문화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체(Che)는 좌파 성향의 가정에서 자란 게바라는 소년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접하게 되었다.

체는 스물다섯 살에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이미 진보정권을 이루어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과테말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그는 두 가지 큰 변화를 경험했다.

첫 번째 변화는 페루에서 학생운동을 벌이다가 과테말라로 망명한 힐다 가데아(Hilda)와의 결혼을 들수가 있고, 민주 선거로 이룬 과테말라의 아루벤스 진보정권이 미국 자본의 지원을 받은 아르마스의 쿠데타로 인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것이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체 게바라는 비폭력적인 방법을 이용한 개혁은 한낮 꿈일 뿐이며, 남미 민중을 위한 진정한 혁명은 무력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1. 체 게바라와 힐다 가데아와의 만남

페루의 한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힐다 가데아 아코스타( Hilda Gadea Acosta , 1925. 3. 21 – 1974. 2. 11)는 경제학자로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어떤 날 갑작스럽게 변했다. 페루의 국가 집행 위원회의 경제 비서였는데 페루에서의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1948년 페루에서 과테말라로 떠나야 했다. 그곳으로 망명했다.

과테말라는 혁명의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1953년 그곳에서 체 게바라를 만났습니다. 젊은 체(Che)의 눈동자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힐다는 그의 운명 속으로 빠져들어가 함께 생활했다.

힐다 가데아와 체 게바라 사진

과테말라에서의 생활은 힘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지지하며 혁명의 길을 걸어갔다. 가데아와 게바라는 과테말라에서 버티기가 힘들었다.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멕시코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쿠바 반군에게 게바라를 소개했다. 이미 페루 국가집행위위원회 경제비서로 활동하며 이념을 함께하며 친분관계를 유지하던 쿠바반군들이었다.

힐다는 체와 함께 미래를 꿈꾸며, 체의 정치적 열정에 힘을 실었다. 힐다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 1955년 9월 멕시코에서 게바라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는 혁명적 동지인 체의 곁에서 자랑스러운 혁명가의 부인으로 살았다.

2. 체 게바라의 혁명가로서의 삶과 힐다와의 이별

그러나 운명은 늘 변화한다.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의 풀겐시오 바티스타 대통령의 독재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을 돕고 있었다.

1958년 11월, 학교 교사이자 지하 활동가인 알레이다 마치(Aleida March)는 아르헨티나 혁명가인 체 게바라(Che Guevara)를 처음으로 만난다.

체게바라 눈에는 다른 여인이 비쳤다.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함께 싸운 쿠바 혁명이 성공한다음 힐다는 그의 남편을 찾아 쿠바로 왔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이전의 체가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 게바라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충격적인 고백을 듣자마자 체 게바라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이혼에 동의했고 1959년 5월 22일 이혼으로 그들의 결혼생활은 끝이 났다.

힐다는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1956년 2월에 딸 베아트리츠(Beatriz) 딸을 낳았으나 힐다는 체 게바라의 정치적인 성공만을 응원하며 살았다.

게바라와 힐다의 사진

이혼 후 체가 알레이다와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가끔은 그와 함께했던 추억의 흔적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러나 힐다는 체 게바라의 정치운동에 충실했으며 평생 그를 흠모하며 추억했다.

힐다는 나중에 체와 함께 했던 혁명사업과 그와의 짧지만 행복했던 삶들을 기록한 그녀의 회고록 “체와 함께한 나의 인생(My Life With Che)”를 썼다.

그녀는 그의 희생과 열정을 기억하며 살았다. 그녀는 그의 영혼이 자신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힐다는 체 게바라라는 혁명가의 이름을 미래 세대에 전하고자 노력하며 평생을 살았다.

힐다 가데아는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녀는 혁명가로서의 체 게바라와 함께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그의 이념을 계승하고자 했다. 그녀의 체게바라와의 사랑이야기는 아련함을 남겨주는 러브스토리다. 힐다는 1974년 암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49세 때이다.

다음편은 체게바라가 그의 첫번째 아내 힐다를 버리고 만난 그의 두 번째 연인, 알레이다 마치와의 사랑이야기를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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