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헨델의 연인(?), 결혼과 사생활에 관한 에피소드 (1/2)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1685.02.23~1759.04.14])은 독일 출생의 영국 작곡가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젊었을 때는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1726년(41세)에는 영국으로 귀화하여 영국인이 되었다.
그의 음악은 바로크 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며,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와 함께 그 시대 음악을 크게 영향을 끼쳤다. 공교롭게 둘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 나기이다.
헨델은 독일의 작센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부친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달빛 아래서 몰래 음악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이후에는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영국으로 이주하여 귀화하여 국제적인 음악가로 활동했다.

헨델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사생활을 비밀로 했다. 그러나 그의 결혼에 관한 에피소드나 그를 괴롭혔던(?) 여인들, 주변의 여인에 관한 얘기들로 헨델의 연인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달래 보려 한다.
우선 헨델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과 선천적으로 여성을 좋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평생 로맨스다운 로맨스 없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 이유에 대해서는 뒷 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결혼도 결혼이지만 그의 사생활은 극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생활을 비밀로 한 이유들을 살펴보자.
1. 헨델이 결혼하지 않고 사생활을 비밀로 한 이유
첫 번째로 헨델은 그의 음악가 친구인 조반니 보논치니(Giovanni Bononcini, 1670– 1747)와 경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음악상에서의 적수였으며, 헨델을 질투하게 만드는 음모와 경쟁이 있었다.
이런 경쟁 관계에서 작은 스캔들이라도 나면 헨델은 루머에 휩싸여 음악적으로 조반니에게 뒤처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헨델의 라이벌인 보논치니는 이태리에서 태어났으나 8세부터 고아가 되어 불우한 환경이지만 볼로냐의 음악 학교에서 공부했다. 1720년부터 1732년까지 런던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동안 그의 인기는 1712년 런던에 도착한 헨델과 맞먹었다.
당시 왕권파인 토리당은 헨델을 선호했고 비왕권당인 휘그당은 보논치니를 선호했다.
헨델은 꾸준히 보논치니에 비해서 우위를 점했고, 보논치니는 그의 추종자들을 이끌었던 말보로 공작부인의 연금 수령자가 되었다.
그러나 1720년 보논치니가 안토니오 로티의 마드리갈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음악발표를 하였다. 이와 같은 표절 혐의를 받다가 협의가 입증되자, 불명예스럽게 영국을 떠나게 되면서 헨델과의 라이벌 관계는 헨델의 압승으로 끝나게 된다.
다른 이유로 헨델은 귀족들과 권력자들과의 관계에서 사회적 압박을 받았던 것도 이유이다. 이들은 귀족인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헨델에게 음악적 제약을 하기도 하고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들과도 관계될까 봐 끊임없이 그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당연히 헨델의 사생활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헨델은 무엇보다 본인이 개신교 신자로서 자신의 신앙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금욕적인 사생활을 신중하게 지켰고,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비밀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헨델은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비밀로 하며 음악활동 특히 작곡에 집중했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칭해지는 헨델의 훌륭한 음악을 현재 우리가 듣는 것은 역설적으로 금욕적인 헨델의 개인 생활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 헨델이 결혼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때는 1703년 헨델의 나이 18세 때의 일이다.
2.헨델의 결혼과 관련한 에피소드
헨델은 오르간 연주자로도 유명했다. 1703년 여름, 18살의 젊은 헨델은 친구인 마테존(Johann Mattheson)과 함께 독일 북부의 뤼벡(Lübeck)까지 유명한 작곡가이며 오르간 연주자인 부크스테후데의 오르간 연주를 듣기 위해 여행을 간다.
당시 오르간 연주자이며 마스터인 북스테후데는 이미 고령이었고 자신의 후임자를 찾고 있었다.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erich Buxtehude)는 1637년에 덴마크 헬싱보리에서 태어난 독일의 바로크 작곡가이자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이다. 그는 중기 바로크 음악의 한 정점을 이루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연주와 작품은 연구와 감상의 대상이다.
헨델은 북스테후데의 오르가니스트의 직위를 노리고 후임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전임 오르가니스트의 딸, 즉 북스테후데의 딸과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북스테후데가 헨델과 자기 딸의 결혼을 제안한 이유는 그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자리는 전임 오르가니스트의 직계 자손, 즉 전임자의 아들이나 사위만 승계할 수 있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스테후데 또한 전임 오르가니스트인 프란츠 툰더의 딸과 결혼하여 그 직위를 승계했다.
북스테후데의 딸은 30살의 과년한 나이였고 헨델의 나이는 18살에 불과했다. 어린나이에 오르간 연주마스터가 되고자 열두 살이나 연상인 여자와 결혼할 수는 없었다.
헨델은 이론 조건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 2년 후에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바흐와 헨델은 같은 해에 태어나 동갑 나기였는데, 2년 후면 바흐가 제안받았다면 바흐는 20살, 복스테후데의 딸은 32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