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1962)는 독일계 스위스의 소설가이다.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헤세의 성장과정과 경험은 그의 문학 작품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세대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1960년대의 반 문화 운동과 관련지어진다.
헤르만의 아버지는 선교사이고 어머니 또한 독실한 신자여서 엄격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들은 헤르만에게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고 의무감이나 자기중심적 교육을 시켰다.
이 때문에 어머니와 사이는 매우 좋지 못했다. 어머니가 위독했을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장례식에도 찾아가지 않았을 정도였다.
어머니 또한 헤세의 작품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하니 서로 사이가 많이 안 좋았던 것이다.
헤세는 아런 가정환경에서 일찍 독립하여 직업생활을 했다. 이런 이른 직업생활은 그의 정신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했고, 그가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된 계기가 된다.
1. 10년의 팬심, 헤르만 헤세의 세 번째 부인 니논 돌빈
독특하고 그만의 세계를 가진 헤세의 결혼 생활이 평탄할 리 없다. 갑작스러운 독일군으로의 입대와 해외로의 여행은 아내 미아 베르누이와의 불화의 원인이 되고 결국 이혼하고 두 번째 부인 루스뱅거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된 루스벵거와의 결혼생활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파경을 맞게 되고 10년 동안이나 자신의 문학작품을 흠모하던 유부녀 니논 돌빈을 만나게 된다.

헤세의 50번째 생일인 1927년 7월, 헤세의 친구 휴고 볼(Hugo Ball)에 의해 헤세의 첫 전기가 발표되었다.
헤세의 소설들이 성공을 거두자 새로운 소설이 발표된 직후 미술사학자 니논 돌빈( Ninon Auslander Dolbin)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니논 돌빈( Ninon Auslander Dolbin, 1895 ~ 1966)은 미술사가이며 1911년부터 헤르만의 팬이었다.
니논은 루마니아 체르노비츠에서 유대인 변호사의 딸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Vienna)에서 고고학, 미술사, 의학을 공부했다.
1910년 헤세의 소설 <피터 카멘진드>를 읽고 감명을 받아 헤세에게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니논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인 1921년에야 헤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때는 단순히 팬과의 만남이었고, 헤세는 첫 번째 부인인 미아와 결혼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니논은 1918년에 캐리커처 작가 프레드 돌빈(Benedikt Fred Dolbin)과 결혼했지만, 1920년에 별거생활로 헤어져 지냈다.
1921년 니논과 헤세는 팬과 작가로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니논은 헤세의 지성적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1911년부터 이어진 헤세에 대한 그녀의 짝사랑은 계속되었다.
1926년 겨울, 취리히에서 둘은 다시 만났고, 1년 후 니논은 비엔나의 집을 팔고 헤세가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카사 카무치 궁전으로 이사를 하여 동거하기 시작했다.
둘의 만남은 동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급기야 1931년 니논이 남편 프레드 돌빈과의 이혼이 마무리되자마자 결혼하기로 한다.
결혼 후 1931년 초 둘은 카사 카무치를 떠나 헤세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보드머에 의해 평생 사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몬타뇰라 근처의 더 큰 집으로 이사했다.

헤세는 공식적으로 니논과 1931년 11월에 결혼했고, 그의 마지막 주요 작품이 될 <유리구슬 게임> 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2. 독일 나치 정권에서의 유대인 탄압과 유대인 니논 돌빈
니논은 유대인이었다. 1940년 당시 나치 정권의 끈질긴 유대인 탄압정책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세는 공개적으로 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니논을 보호하였다.
비록, 헤세가 나치정권의 정치에 대한 증오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나치를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헤세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많은 대중으로부터 비판받았다.
결국, 헤세는 나중에 나치 독일정부를 비난하며, 조국 독일을 버리고 스위스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니논은 문학가로서의 헤세와 자신을 나치정권의 탄압에서 보호해 준 헤세에게 사랑으로 모든 걸 희생한다.
니논은 남편 헤세의 글과 편지를 수집, 편집을 하여 정리를 해주었고, 고질적으로 나쁜 눈을 가진 헤세의 눈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헤세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많은 일을 도와주는 역할도 했다.
헤르만 헤세는 말년에 정원 가꾸기를 즐기다가 1962년 8월 세상을 떠났다.
니논은 남편 헤세의 편지와 헤르만의 어린 시절, 특히 바젤 크나벤하우스에서의 공부에서 나온 가족 문서를 필사하여 보관했다.
그리고 남편의 작품은 영화로 촬영하지 못한다는 헤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지키며 1966년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71세였으며 남편 헤르만 헤세와 함께 묻혔다.
헤세의 세 번째 부인, 니논과의 결혼생활은 헤세의 후기작품에 여성 캐릭터의 복잡한 감정과 내적 세계를 더 깊이 탐구에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헤르만 헤세의 총 세 번의 결혼은 그의 작품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여성 캐릭터와의 관계, 종교적 주제, 감정의 표현 등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다.
헤세의 재밌는 사실은 탈모가 굉장히 빨리 왔고, 독특하게도 알몸 등산이 취미였다는 점이다.
사진작가로 성장한 헤세의 아들 마틴 헤세가 찍어준 알몸 등산 사진도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