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졸라의 연인(2/2), 두번째 사랑 아멜리타 발타르

피아졸라의 연인(2/2) 두 번째 사랑 아멜리타 발르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탱고라는 음악하면 떠 오르는 대표적인 음악가로 아르헨티나의 작곡가이자 반드네오니스트로 유명하다. 그의 탱고음악은 혁신적으로 현대적인 변주를 가미하여 누에보 탱고(Nuevo Tango)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1921.3.11.-1992.7.4)는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부모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1953년 파리유학 중 자작 탱고, 승리(Triunfal)를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 앞에서 연주하자 이게 진정한 피아졸라 음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클래식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탱고는 그냥 생계 수단으로만 여겼던 피아졸라로서는 이를 계기로 탱고 음악가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다.

피아졸라의 이미지

1943년 그는 미술가인 첫 부인 데데 울프(Dedé Wolff)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다이애나(Diana)와 다니엘(Daniel)이라는 두 자녀를 낳았다.

그리고 데데와의 정치적 의견 차이와 피아졸라의 타고난 바람기의 외도문제로 법적으로 별거했다.

한때 데데와 피아졸라는 화해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20대 중반 아밀레타 발타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아졸라의 두 번째 연인, 아멜리타 발타르와의 사랑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1. 피아졸라와 아멜리타 발타르와의 만남

피아졸라는 카페 콘서트에서 노래를 하는그녀를 우연히 발견했다. 거기서부터 두사람의 멋진 순간이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피아졸라의 오페라 “María de Buenos Aires”에 출연하도록 제안했다.

아멜리타 발타르 (María Amelita Baltar. 1940~ )는 대부분의 탱고 예술가들과 달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류층 동네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의 시골에서 자랐다. 그녀는 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지만, 솜브라스(Sombras) 밴드에서 아르헨티나 민속 음악 가수로서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60년대에 등장한 탱고의 선도적인 아르헨티나의 가수로 터프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

피아졸라와 아멜리타, 페라르의 이미지 사진

그녀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과 풍부한 음악적 재능으로 아르헨티나 음악계에서 존재감을 갖고 있으면서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수다.

발테르는 피아졸라를 보고 “네모난 가방 같은 네모난 바지를 입고 줄무늬 셔츠를 입었는데 정말 끔찍했어요.”라고 첫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피아졸라, 호라시오 페레르(Horacio Ferrer)와 함께 오페라 María de los Buenos Aires (1968)와 Balada para un loco (1969)로 탱고에 혁명을 일으킨 트리오의 멤버가 되었다.

피아졸라의 제안에 의한 초기 마리아 데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오페라는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아멜리타는 평생토록 마음과 영혼에 간직할 작품이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라고 회상했을 정도다.

그녀는 포크 가수로 시작한 이래, 오페라에서 독창적인 목소리와 자신이 부른 모든 노래에 부여한 특별한 극적 성격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둘의 관계는 복잡하고 감정적인 양상을 보였다. 처음엔 아멜리타가 피아졸라를 “정말 나쁜 태도를 가진 뻔뻔스러운 영화배우”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마음이 변해갔다.

피아졸라는 아멜리타를 영화관람, 미국 대사관에서의 칵테일파티,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며 구애했다. 아멜리타는 처음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피아졸라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되었다.

아멜리타는 피아졸라의 개인적인 매력보다는 그의 음악적 재능에 더 큰 감명을 받았으며, 함께 탱고 노래 시리즈인 ‘tango-canciones’를 작업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피아졸라는 아멜리타와의 만나게 되는 1969년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해로 여기게 되었고, 어느 때보다 많은 작품을 작곡하며 대중에게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의 음악에 찬사를 보냈다.

아멜리타 발테르의 이미지 사진

피아졸라는 아멜리타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한 뒤, 1971년에는 유럽으로 이주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론부부의 페론주의 정권으로 인한 혼란등이 겹치면서 피아졸라는 정신적으로 흔들렸다.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아멜리타의 반대로 이주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곡도 영향을 받아 아무 작품도 쓰지 못했고 결국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1972년 10월 퇴원했지만 피아졸라는 이 일이 있은 후 그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후 피아졸라는 이탈리아 외에도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1975년에는 로마시에서 황금곰수상을 받는 등 영예를 누린다.

그러나, 또다시 고국 아르헨티나의 정치상황이 악화되면서 향수병이 또 도졌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다시 이주를 계획한다.

거듭된 피아졸라의 향수병으로 갈등한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좋지 않게 변하면서, 결국 아멜리타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로마에서 피아졸라에게 이별을 고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중에 아스토르를 정말로 사랑한 적은 없다고 고백했다. 초기의 열정은 3개월 정도 지속됐지만, 그 이후 관계를 유지하게 만든 것은 오직 좋은 대화뿐이었다고 했다.

아스토르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아르헨티나에서 그녀를 찾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결국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2. 아멜리타와 헤어지고 난 후의 피아졸라

오랜 세월 반 파트너, 반 연인 관계로 지내던 아멜리타와의 결별로 피아졸라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아멜리타의 이름을 딴 곡 ‘아멜리탱고( Ameli Tango)’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음악’으로 개명하고 그녀의 이름을 자기 앞에서 꺼내지 못하게 하는 등 그녀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다른 한 편으로 그의 오랜 라이벌 맞수였던 트로일로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그에게 헌정하기 위해 모음곡 ‘트로일로(Suite Troileana)’를 작곡했고, 이 작품이 그의 영화 음악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Il pleut sur Santiago)’, ‘뤼미에르(Lumiere)’와 함께 그 당시의 피아졸라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아멜리타에게 얻은 좌절감이 피아졸라를 작품의 열정으로 승화시켜 음악의 사나이로 키운 것이다.

피아졸라와 아멜리타의 관계는 단순한 감정적 교류를 넘어, 서로의 예술적 업적에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아스토르의 음악적 성공에 아멜리타가 기여한 바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둘 사이의 이야기는 예술과 인간관계의 복잡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멜리타는 피아졸라의 뉴 탱고(New Tango)와 만난 후, 팝 음악을 혼합한 독특한 음악 스타일을 완성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특히 그녀의 음악은 탁월하게 선 굵은 보컬과 복잡한 멜로디를 쉽게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대표작은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가 있다.

1975년 중반, 피아졸라는 신시사이저와 전자 악기를 활용한 실험을 시작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전자 8중주단을 결성하여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1978년에는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위한 작곡 활동에 이어, 8중주단을 포기하고 어쿠스틱한 실내악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5중주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피아졸라의 반도네온 사진

해외에서는 특히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1980년대에는 해외, 특히 영미권 활동에 집중하며 여러 장르에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스타가 되었지만, 바쁜 일정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겪기 시작한다.

1988년 심장수술을 받은 후 건강이 악화되는 가운데, 1990년 7월 3일 그리스아테네의 야외음악당에서 마지막 공연을 가진 뒤 파리로 돌아와 다음 공연을 준비하던 피아졸라는 8월 5일 샤워 중 뇌출혈로 몸의 오른쪽이 마비되어 쓰러졌다.

급히 치료를 받은 후 아르헨티나로 귀국해 오랜 투병생활에 들어갔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폐렴과 장출혈 등의 질환까지 겹치면서 1992년 7월 4일 향년 71세로 타계했다.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평화공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Julym

**유튜브로 아멜리타의 노래를 감상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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