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연인(1/2), 데데 울프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탱고라는 음악하면 떠 오르는 대표적인 음악가로 아르헨티나의 작곡가이자 반도네오니스트(bandoneónnist)로 유명하다. 그의 탱고음악은 혁신적으로 현대적인 변주를 가미하여 누에보 탱고(Nuevo Tango)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1921.3.11.-1992.7.4)는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부모인 빈센토 피아졸라와 마네티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탱고보다는 재즈와 클래식을 주로 듣고, 바흐, 슈만의 음악과 유행하던 재즈 음악을 반도네온으로 연주하길 좋아했다.
1953년 프랑스의 전설적인 음악 교육자인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의 초청으로 유학하여 자작 탱고음악을 연주하고 찬사를 받았다.
클래식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탱고는 그냥 생계 수단으로만 여겼던 피아졸라로서는 이를 계기로 탱고 음악가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Libertango”, “Oblivion”, “Adiós Nonino” 등이 있다. 그의 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음악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다.

1. 피아졸라의 탱고와 반도네온
피아졸라는 어릴 때부터 바흐를 포함한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접했다. 집에서는 아버지의 탱고 오케스트라 음반을 들었고, 1929년에는 아버지가 뉴욕의 전당포에서 사 온 반도네온(bandoneón)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1930년에 뉴욕으로 간 가족은 맨해튼에 있는 이탈리아타운으로 이사했다. 1932년 그의 나이 11살 때 그의 첫 번째 탱고인 “La Catinga”를 작곡했다.
다음 해에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학생이었던 헝가리 클래식 피아니스트 벨라 빌다에게서 음악 수업을 받았는데, 그에게서 반도네온으로 바흐를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1943년, 그의 나이 22살 때 아르헨티나의 클래식 피아니스트 라울 스피박(Raúl Spivak)과 함께 5년 동안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고, 그 결과로 첫 클래식 작품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쓰기도 했다.
1943년 그는 미술가인 첫 부인 데데 울프(Dedé Wolff)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결혼했다. 그리고 다이애나(Diana)와 다니엘(Daniel)이라는 두 자녀를 낳았다.
2. 피아졸라와 데데 울프와의 만남
데데(Dedé)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오데타 마리아 울프는 1940년 9월 티 파티에서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를 처음 만났다. 피아졸라를 본 데데는 그가 다소 못생겼다고 생각했지만, 피아졸라는 데데로부터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느꼈다.
데데 울프(Odetta Maria Wolff,1914~2010)는 1914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의 화가이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초현실주의 화가 비센테 포르테 (Vicente Forte)에게 그림을 배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했고, 곧 피아졸라는 데데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으며, 이후 1942년 5월 정식 약혼식이 거행되었고 빠르게 둘은 약혼하게 된다. 결혼식은 1942년 10월 말에 거행되었다.
데데는 18세, 피아졸라는 20세였다. 피아졸라는 Troilo 밴드의 반도네온 연주자로 전국을 여행하는 바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둘은 사랑을 키워나갔고, 결혼 후 코르도바 산맥에서 신혼여행을 즐겼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첫 집을 마련했다.
둘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고, 1943년 7월에 그들의 딸 다이아나(Diana Irene)가 태어났고, 그 뒤를 이어 1945년에는 아들 다니엘(Daniel Hugo)이 태어났다.

젊은 부부와 그들의 아이들이 편안한 일상에 정착하는 동안 피아졸라의 트로일로(Troilo)에서의 음악적 활동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1953년 피아졸라에게 운명적인 일이 일어났다. 관현악을 위해 작곡한 신포니에타(Sinfonietta)를 발표했는데, 이 곡의 악보를 받아 든 프랑스의 전설적인 음악 교육자인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는 그를 초청하여 음악을 배우게 했다. 이듬해 아내 데데와 함께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불랑제는 피아졸라의 자작곡들에서 뭔가 특이점을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클래식 외에 다른 음악도 한 적 있느냐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피아졸라는 자신이 탱고음악을 했다고 밝히기 싫어서 계속 말을 돌리고 우물쭈물했지만, 결국 자신이 탱고 연주자라고 커밍아웃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탱고는 정통음악과는 격을 달리하던 음악이었다.
피아졸라는 자작탱고를 연주하자 블랑제는 피아졸라의 재능을 알아보고 “진정한 피아졸라의 음악”이라는 찬사를 보내게 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피아졸라는 탱고를 생계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었는데 블랑제의 찬사를 계기로 피아졸라는 탱고 음악가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피아졸라는 블랑제의 작곡 수업에 참석했고 데데는 그림에 대한 열정에 수업에 참여했다. 데데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파비안 세비츠키(Fabian Sevitsky)상과 장학금을 받고, 유명한 입체주의자인 앙드레 로테(Andre Lohte)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한가한 시간에 그들은 종종 영화를 보러 갔고, 박물관과 미술 전시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음악활동과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면서 파리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피아졸라는 모국 아르헨티나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피아졸라가 아르헨티나로 돌아간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그들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후,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나빠졌다. 둘 간의 정치적 의견 차이와 피아졸라의 타고난 바람기가 문제였다.
3. 피아졸라의 바람기와 데데와의 헤어짐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후 그들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상황을 반전하고자 급기야 뉴욕으로 이주했다. 피아졸라는 음악가이자 편곡가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어려움을 겪었고 가족은 다시 한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오게 되면서 부부관계가 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피아졸라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때 견고했던 관계가 위태롭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피아졸라의 아들 다니엘은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여자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우리 아빠가 여자만 쳐다보는데 참 이상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피아졸라가 노골적으로 바람기를 드러냈다.
그리고 데데와 피아졸라는 한동안 정치적 이견 문제로 다툼을 벌여왔는데, 피아졸라는 페론주의에 반대한 반면 데데는 좌파 페론주의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컸다. 정치적으로는 둘이 완전히 반대입장에 선 것이었다.

피아졸라는 한때 페론 부부가 정권을 잡고 독재자처럼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페론 정권을 찬양하는 음악을 하면서 페론부부에 반감이 컸다.
오래전 반 페론주의자인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 공화국’과 ‘페론 찬가’를 연주해야 했고, 심지어 본인이 직접 작곡해야 했다. 이후에도 계속 페론주의자들의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기 때문에 페론주의자들에게 넌덜머리가 났다. 본인이 흑역사로 인정한 부분이었다.
둘 간의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피아졸라는 다른 여성을 만나기 시작했다. 국내 정치상황은 소란스럽게 변해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1966년 2월 2일 피아졸라는 이런 핑계를 대고 여행가방을 싸서 아파트를 떠났다.
피아졸라는 데데에게 “정말로 당신에게 합당한 남자를 찾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의 결혼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둘은 법적으로 인정하는 별거를 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에서 이혼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이혼은 20년이 지난 1988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별거를 시작한 이후 피아졸라는 본격적으로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심지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와중에도 별거 중인 아내, 데데와 밀당을 시도하면서 양다리를 놓기도 하는 파렴치를 부렸다.
법적 별거 당일에 피아졸라는 점심식사자리에 데데를 데려간 다음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자”라고 제안했다. 데데는 매우 기분이 상하여 “저는 그냥 여자가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거절했다.
그리고 이때 40대가 된 데데는 임신을 했으나 의사의 조언에 따라 낙태를 했다. 그녀가 이 소식을 피아졸라에게 전화를 걸어 전했을 때, 그는 “정말 재밌다”라고 냉담하게 웃었다고 한다.
데데와 피아졸라의 이야기는 깊은 사랑에서 시작하여, 성공과 시련을 겪고, 마침내 슬픈 이별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그들의 사랑여정은 처음의 사랑이 강력했더라도 인생이 어떻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때 두 사람은 화해하려는 시도를 했었으나 소용없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 아밀레타 발타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20대 중반이었고 데데는 40대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사는 피아졸라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서 1966년부터 ‘67년까지 2년 동안 영화음악 두 곡을 제외하고 아무 작품도 쓰지 못했다.
피아졸라와 데데의 사랑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그리고 다시 데데와 피아졸라가 화해하는데 있어서의 방해물, 아멜리타 발테르와 아스트로 피아졸라가 어떤 사랑을 펼쳐갔는지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들어보자. Julym
*** 아래의 유튜브 바로가기를 클릭하여 피어졸라의 대표작 “리베르 탱고를 감상해보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