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의 연인, 루 살로메

프리드리히 니체의 여인, 루 살로메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10.15-1900. 8.25)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로,현대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니체는 신의 죽음, 거부와 창조의 의지, 영웅적 도덕 등의 주제를 다루었으며, 그의 작품은 개인주의, 초인적인 개체의 발전, 문화적 태도 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대 철학자다.

1. 니체의 사랑스러운 연인, 팜므파탈 루 살로메

니체는 1882년 니체는 친구이자 제자인 파울 레에(Paul Rée)의 소개로 루 살로메를 처음 만나게 된다.

루를 보고 첫눈에 반한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각별히 대했고 루도 니체의 철학세계에 매력을 느껴 사귀던 레에와 절교하고 니체와 사귀기 시작한다.

이것이 니체의 유일한 사랑이자 상처를 남기고 떠난 루 살로메와의 스토리의 첫 장식이다.

루 살로메의 사진

루 살로메(Lou Salomé,1861. 2. 12 ~ 1937. 1. 5)는 독일의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루는 여러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여인으로, 이름다운 미모와 지적인 모습으로 당대 지식인들로부터 러시아에서 온 뮤지라는 별칭을 갖은 뭇 지식인의 뮤즈이자 프리마돈나였다.

루는 프랑스계 위그노 교도 부모의 사이에서 러시아 상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고급장교의 딸로서 유교, 신학, 철학, 논리학, 종교사 등을 배우며 예술과 지적 탐구에 빠져들었다.

그중에서도 루터교 목사 하인리히 길로트(Heinrich Gillot)의 첫사랑은 그녀에게 철학적인 지식을 제공하였다. 후에 길로트가 루에게 청혼했지만 거절하고 취리히대학에 진학했다.

취리히 대학에서의 공부 도중 발병한 폐 질환으로 인해 이탈리아로 간 살로메는, 로마에서 철학자 파울 레에(Paul Rée)와의 만남을 통해 철학과 신의 문제에 대해 깊이 논의하는 등 큰 영감을 받았다. 그런 중 레에는 프리드리히 니체를 루 살로메에게 소개하며 철학적 동반자로서 셋은 친구가 됐다.

2. 니체와 루 살로메, 파울 레에와의 특이한“삼위일체” 동거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니체와의 만남은 독특한 사랑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첫눈에 반한 니체는 루를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로 극찬했고, 이로 인해 살로메는 레에와 결별한다. 니체와 깊은 관계를 원치 않던 루는 니체가 청혼하자 이를 거절하고 자신의 독립적인 정신을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헤어진 레에게 연락하여 세 사람은 독특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 독특한 동거는 세 사람이 육체관계없이 오로지 철학만을 논의하면서 지내자는 제안에서 이루어진 이른바 ‘삼위일체’라고 불렀던 특이한 삼각관계의 동거였다.

루 살로메와 니체, 레에의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사진

이같은 제안을 레에는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루를 계속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수락했다. 그러나 니체는 화를 내며 거절했다. 그러나 칼자루의 잡은 사람은 루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니체는 이를 수락했고 루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는 심정으로 자기합리화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후 니체는 루에게 다시 청혼을 한다. 그러나 지난번과 같이 루는 니체의 청혼을 거절한다. 루는 이후 니체와 약 15일간 철학적 대화에 하며 지냈지만, 더 이상 니체에게 철학 부분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니체 몰래 레에와 함께 도망간다.

이후 둘은 베를린에서 동거하며, 1887년 레에가 루에게 청혼하지만 루는 지금처럼 지내자고 하면서 레에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러자 레에는 더 이상을 참을 수 없다면서 동거하던 집을 나가 버렸다.

레가 떠난 후 루를 열렬히 짜사랑하던 동양언어학자인 F.K안드레아스의 열렬한 구애를 받아들여 결혼을 한다.

루가 안드레아스와 결혼하게 된 이유는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교수직을 잃은 안드레아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이 결혼은 양측에게 일종의 협약에 가까웠다.

안드레아스와 루의 결혼소식을 들은 레에는 깊은 상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느 날 한적한 시골의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루는 안드레아스와 결혼했지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여러 명의 섹스파트너가 있었고 방패막이로 안드레아스를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안드레아스와의 성행위는 없었고 다른 남성들과 자유롭게 만나는 걸 용인하는 조건의 결혼이었다.

이런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1892년 안드레아스는 법률적 남편임을 내세워 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으나 루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이 사건 이후로 둘은 별거했지만 안드레아스가 죽은 1930년까지 법률적 부부관계는 유지했다.

3. 루 살로메의 남성 편력

살로메의 생애에는 릴케와의 만남도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루보다 14살 어린 릴케는 살로메에게 큰 감동을 주며 두 사람은 수년 동안 친교를 유지한다.

그러나 릴케가 살로메에게 집착적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자유를 주장하며 이별을 선택한다. 이후 두 사람 간의 편지와 시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심경을 담고 있지만 루가 의도하는 이별의 방식이었다.

루는 두 가지 부류의 남성을 만났다. 그녀 스스로 남성에게 육체적인 매력을 느껴서 성관계를 하는 부류가 있었고, 연인으로서 지적인 욕구를 채워줄수 있는 부류가 있었다. 루는 지적인 교류를 하는 남자와는 철저히 성관계를 거부했다고 한다. 따라서 니체는 둘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연인, 루 살로메 1

살로메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의 친분도 쌓으며 다양한 지성인들과 교류하였다.

이렇듯 그녀의 삶은 예술과 사랑, 철학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독립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걸어가며 여러 인물들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과 철학의 다양한 측면을 탐험섭렵해 갔다.

어쨌든 루 살로메는 수많은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그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항간에 루 살로메와 사귀고 9개월이 지나면, 작가의 경우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된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예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그녀와 헤어진 후에 탄생한 작품​​이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나 그와 같은 루머를 뒷받침해 주는 거라 할 수 있다.

살로메로 인해 대단한 사상과 작품들이 탄생했다는 루머와 함께 그 결과로 루 살로메의 삶은 한 편의 묘한 그림 같은 이야기로 남아있다.

4. 니체의 죽음

니체는 1888년 9월부터 많은 저작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1889년 1월 3일, 어떤 일이 정확히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그날 아침에 니체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이상행동을 보였다. 이후 니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를 돌보던 친구 프란츠 오버베크에게 따르면 니체의 정신 상태는 급속히 악화되어 갔다. 니체는 스위스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아 ‘뇌연화증’으로 오인되었다.

니체는 판단력과 언어 능력을 상실하며, 나움부르크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 니체는 혼란스러운 삶을 보내며 고독과 어려움을 겪다가 1900년 8월 25일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났다.

니체의 죽음 이후, 니체의 작품은 1893년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니체의 작품은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에 의해 편집되고 왜곡되었으며, 나치당원들에 의해 남용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니체의 유고집을 편집하여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그 후에도 니체의 이름으로 글을 쓰며 그의 명성을 이용했다. 엘리자베스는 1935년 사망하자 니체의 작품은 그의 삶과 함께 여러 차례 재평가되는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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