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베르트의 연인, 테레즈 그로브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 1.31~ 1828. 11. 19.)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며 그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담은 ‘가곡의 왕’으로 칭해지며 고전 음악에 대한 크게 기여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슈베르트의 사랑 중 가장 유명하고 인상깊은 사랑은 테레즈 그로브(Terese Grob, 1798.11. 16 ~ 1875. 3. 17)라는 여성이다.

슈베르트가 어릴 때 첫사랑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은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다만 슈베르트의 친구나 테레즈에 의해 전해지기는 하나 정확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글에서는 슈베르트의 사랑이었던 테레즈 그로브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본다.

1.테레즈를 만난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어릴 때 시골의 교회 선생님의 딸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는 슈베르트의 작품인 미사의 소프라노 솔로를 아주 잘 부르면서 슈베르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의 슈베르트는 아직 어리고 돈이나 일자리가 없어 감히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 선생님의 딸은 여건이 좋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이때의 배신감으로 슈베르트는 여성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다.

후에 이때를 테레즈 그로브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슈베르트를 만났을 때부터, 그는 나에게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와 만나기 전 시골에서 온 선생님의 딸에게 눈독을 들였는데, 내가 슈베르트의 미사에서 소프라노 솔로곡을 불러 슈베르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슈베르트와 테레즈는 1814년에 리히텐탈이라는 교회에 같이 다니게 되면서 만나게 된다. 테레즈는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고 슈베르트는 성가를 작곡하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테레즈 그로브의 초상화

테레즈 그로브(Therese Grob, )는 하인리히 그로브와 테레지아 멘너의 딸로, 오스트리아 대공국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1804년 4월 6일에 사망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하인리히 시니어가 설립한 소규모 실크 짜기 사업을 계속 운영했다. 이곳은 슈베르트의 집과 매우 가까웠다.

테레즈는 매력적인 소프라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젊은 동생 하인리히는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슈베르트의 가족과 테레즈의 두 가족은 음악을 통해 더욱 친해졌다.

1814년 7월, 교회의 백주년 기념식에서 슈베르트는 첫 번째 대성가를 완성했고, 테레즈는 슈베르트가 지휘한 초연에서 소프라노 솔로를 성공적으로 부르기도 했다.

슈베르트는 테레즈의 남동생 하인리히를 위해 노래 앨범을 만들었는데, 그중 마지막 곡은 1816년에 완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쨌든 처음에 슈베르트가 테레즈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테레즈의 관심끌기 작전에 사랑이 싹트게 되었다.

슈베르트는 성에 대해 무미건조한 사람이었지만, 테레즈에게 깊은 연정을 느껴 청혼을 했다.

하지만, 테레즈 그로브는 음악적으로는 천재적으로 판단하여 그의 관심을 끌고 연애를 하는 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결혼은 다른 문제 였다.

그의 재정적인 안정성은 부족했고 작곡가로서의 그의 경력 또한 불확실했다. 그리고 외모 또한 남성으로서의 매력도는 떨어졌다.

게다가, 당시 오스트리아의 재상(宰相)이었던 메테르니히(Metternich)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결혼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어서 부모의 허락을 얻기에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러 저러한 이유 때문에 결국 그의 청혼을 거절했다.

슈베르트가 1816년 4월에 신청한 뮌헨의 교사연수대학의 음악교사채용 신청이 그의 경제적 안정을 얻어 결혼을 하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

급기야 테레즈는 1820년 11월 21일 테레제는 제빵사인 요한 베르그만(Johann Bergmann)과 결혼해 버렸다. 그리고 4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렇게 테레즈와 슈베르트의 사랑은 끝났다. 슈베르트와 테레즈와의 관계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은 많지 않으며 추측성 내용이 많이 있다. 그리고 구체적 정황을 알 수 있는 그들간의 러브레터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이 없다.

비록, 슈베르트의 친구들이 슈베르트가 죽은 지 수년이 지난 뒤에도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전했지만, 슈베르트와 테레즈와의 관계는 육체적 관계를 제외한 플라토닉적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2.테레즈와 슈베르트의 사랑이 플라토닉 사랑으로 추정되는 이유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교외의 리히텐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르 슈베르트는 리히텐탈에서 초등학교의 교장을 지냈고 어머니 엘리자베트는 장인의 딸로 요리사였다.

무려 16명이나 되는 자식들에서 13번째로 태어난 슈베르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즐겨하던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

6살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큰 형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다. 그의 생애는 가난하고 매우 고달팠다. 슈베르트는 어린 시절 탁월한 미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목소리 덕분에 빈 궁정예배당의 아동 합창단에 뽑혔다. 슈베르트는 그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했는데 특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런 슈베르트에게도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악보를 볼 때 너무 가까이서 본다는 것이었다. 이에 부모님은 슈베르트의 시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채고 안경을 맞춰 주었고, 이 때문에 슈베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안경을 쓰고 음악 공부를 했다.

슈베르트는 내성적이고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우울함과 절망으로 인한 히스테리도 함께 지니는, 다소 모순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외모적으로는 못생기고 고수머리에 비교적 단신으로 여자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친절한 성격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며, 그중 대부분은 슈베르트가 무명음악가인 것을 안타까워하며 도와주었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초상화

하지만 그는 조울증이 있어 주변사람을 힘들게 했다. 심해질 때면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폭음과 같은 우울증의 증세가 나타났다.

이는 슈베르트가 매독감염에 따른 것으로 추측된다.

슈베르트는 평소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친구인 쇼버의 집에서 잠시 머물 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쇼버와 빈의 밤거리를 돌아다니기도하며 젊음을 즐겼다, 아마도 이때 슈베르트가 매독에 걸리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있다.

슈베르트의 매독감염으로 테레즈와 깊은 사랑에 빠졌을 것이라기보다는 플라토닉 한 사랑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는 이유이다.

3.테레즈가 슈베르트 음악에 미친 영향

테레즈와 슈베르트의 1816년부터 1820년까지 비록 길지도 않은 플라토닉한 사랑은 비록 결혼에 성공하지 못하는 청혼 거절이라는 비통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의 감정과 그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테레즈 그로브와의 사랑 이야기는 그의 개인적인 삶에서 가장 중대하고 가슴 아픈 측면들 중 하나이다.

슈베르트의 낭만적인 분투와 감정적인 경험들은 그의 음악 속으로 그만의 길을 찾아내는 역할을 했다.

그의 음악을 보면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은 강렬하고 진실했다고 믿어진다. 그는 그녀에게 바쳐지거나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에 영감을 받은 많은 작품들을 작곡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들 중 하나인 “Grechen am Spinnrade” (아름다은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파우스트에 대한 사랑을 되돌아보는 젊은 여성 그레첸이 연인 파우스트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물방앗간 아가씨 앨범 표지

그의 음악은 테레즈에 대한 그의 감정을 반영하며 주인공 그레첸을 통해 그리움, 열정, 고통을 전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관계와 관련된 경험은 슈베르트의 음악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으며, 그의 감정을 그의 작품들에 전달하는 그의 능력은 그의 작품들을 특징짓는 감정적 깊이와 명성에 기여했다.

특히 그가 연애 기간 동안 짝사랑, 그리움, 그리고 우울함의 주제들을 표현한 많은 가곡은 슈베르트가 감정적으로 격앙됨을 표현하는 기록들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테레즈 그로브가 슈베르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사항들을 살펴보자.

첫째로 음악을 위한 영감을 들 수 있다.

슈베르트는 테레즈에 대한 그의 감정에 영감을 받은 많은 독일 가곡들을 작곡했다.

이 노래들은 사랑, 그리움, 그리고 짝사랑의 주제들을 반영했으며 슈베르트 자신의 감정 상태와 유사한 것을 그렸다.

둘째로 감정적 깊이가 깊어짐을 알 수 있다.

슈베르트의 청혼과 테레즈의 거절, 그들의 이후의 이별에 대한 감정들은 채워지지 않은 갈망과 감정적 격동에 이르게 했으며, 이 강렬한 감정들은 곡에 심오한 깊이로 스며들게 하면서, 그의 음악적 깊이 더해주었다.

셋째로 외로움과 그리움이 음악에 스며들었다.

둘의 연애 경험은 그가 멜랑콜리, 짝사랑, 그리움과 관련된 많은 감정을 주제대상으로 작곡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많은 그의 가곡들, “Winterreise”의 “Der Lindenbaum”(겨울나그네의 보리수)은 테레즈와의 관계로 인해 느낀 감정들을 반영하며, 깊은 그리움과 슬픔을 보여준다.

슈베르트의 타고난 창의성에 더해 테레즈 그로브와의 긍정적 영향이 그의 예술적인 여정에서 중요한 장으로 남아 있고 슈베르트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음악 애호가들을 계속해서 흥미롭게 하고 있다.

How useful was this post?

Please rate me.

Average rating 4.7 / 5. The number of votes cast 3

No one has voted so far. Please rate your post first.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