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니니의 연인, 로지나 스트로키오, 앨리스 제럴딘 패러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로 카라얀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손꼽힌다. 그의 인생은 불륜과 사랑, 그리고 예술에 대한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영원히 음악 역사에 남을 위대한 마에스트로인 그는 역사상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 3. 25 ~ 1957. 1. 16)는 그의 나이 32살 때, 19살의 카를라 드 마르티니와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 동안 여러 차례의 불륜을 저질렀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프라노 로지나 스토르키오와의 관계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삶은 음악적 경력만큼이나 흥미롭고 복잡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토스카니니의 연인이 된 소프라노, 로지나 스토르키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1900년, 밀라노에서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자자’의 초연을 준비하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시 33세의 유부남이었던 그는 28세의 소프라노 로지나 스토르키오(Rosina Storchio 1876 ~ 1945 )와의 만남을 통해 불륜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로지나는 뛰어난 미모와 음악적 재능을 지닌 소프라노로, 그녀의 리허설을 듣고 토스카니니는 그녀의 비범한 재능에 매료되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발전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로지나 스토르키오는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프라노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지성을 겸비한 인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토스카니니와의 관계는 그녀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고,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4년 후, 푸치니의 ‘나비부인’ 초연을 앞두고 로지나는 토스카니니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이 사실은 초연 당일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드러나게 되었고, 로지나의 배가 드러나자 관객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이 사건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토스카니니는 푸치니의 요청으로 ‘나비부인’의 악보를 점검하던 중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지만, 이를 푸치니에게 전달하지 못한 채 초연에 참석하지 않았다.
결국 ‘나비부인’은 대실패로 끝났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로지나와 토스카니니의 사랑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지만, 그들의 인생은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로지나는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고, 어린아이를 잃은 후 자신도 병에 시달리며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반면, 토스카니니는 그의 예술적 경력을 이어가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마에스트로로서의 명성을 쌓아갔다.
2. 토스카니니와 앨리스 제럴딘 패러의 불륜
로지나 스토르키오와의 사랑을 뒤로하고 토스카니니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된다. 미국공연 중 소프라노 앨리스 제럴딘 패러와의 7년간의 연애는 그의 개인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908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패러가 토스카니니에게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자신과 결혼하라는 최후통첩을 하면서 관계가 복잡해졌다.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토스카니니는 결국 1915년 패러와의 관계도 끝내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수석 지휘자 자리까지 갑작스럽게 사임하고 된다.
이처럼 토스카니니의 불륜은 그의 예술적 경력과 개인적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그는 예술가로서의 길과 사랑의 갈등 사이에서 고뇌하게 된다.
앨리스 제럴딘 패러(Geraldine Farrar,1882~1967)는 미국 소프라노 가수로, 아름다움과 뛰어난 연기력, 그리고 “목소리의 친밀한 음색”으로 유명했다.

1910년대에는 무성 영화에서도 여배우로서 성공을 거두며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토스카니니와의 관계는 그들의 예술적 열정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패러는 토스카니니에게 결혼을 요구하며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라고 압박했고, 이는 그에게 큰 갈등을 안겼다.
결국, 토스카니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수석 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스캔들로 가득 찬 채로 이어졌다.
패러는 1916년 배우 루 텔리건과 결혼하게 되지만, 이 결혼 역시 많은 스캔들을 동반했다. 텔리건의 불륜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1923년 공개적인 이혼으로 끝났고, 텔리건은 1934년 할리우드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3. 토스카니니의 말년과 예술가로서의 삶
토스카니니는 1951년, 54년간 함께한 아내 카롤라를 잃은 후에도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뉴욕에서 아들 발터와 함께 녹음 작업을 하며 여생을 보냈고, 텔레비전으로 권투와 레슬링,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었고, 1957년 새해 첫날 뇌혈전의 발작을 일으킨 후 1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토스카니니는 그의 생애 동안 600여 곡의 레퍼토리를 암보로 지휘하며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초인적으로 악보를 외우는 암보력과 예술적 열정은 그를 단순한 지휘자가 아닌, 음악의 전설로 남게 했다.
토스카니니의 인생은 불륜과 사랑,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그를 영원히 음악 역사에 남을 위대한 마에스트로로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