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가 사랑한 여인들, 길헤르미나 수지, 수전 멧칼프, 마르타 몬테스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가 사랑한 여인들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이자 지휘자, 작곡가이며 동시에 깊은 휴머니스트였던 파블로 카잘스는1876년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태어나 1973년 푸에르토리코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96년의 긴 생애 동안 그는 음악적 업적뿐 아니라 여러 여성과의 특별한 인연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그의 인생 여정 속에서 음악과 삶을 공유했던 네 사람의 여인을 만나보겠습니다.

1. 음악 여정의 시작을 함께한 어머니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의 삶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분은 바로 그의 어머니 필라(Pilar Defilló Amiguet Casals, 1853~1931)입니다.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카잘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하고 아들을 위해 헌신한 분이었습니다.

11살에 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을 공부하다 첼로로 전공을 바꾸고, 매일 아침 바흐 음악을 연주하는 습관을 들인 것도 어머니의 따뜻한 격려와 지지 속에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의 음악 세계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가장 소중한 첫 번째 여인이었습니다.

2. 첼로 선율로 만난 인연, 파블로 카잘스와 길헤르미나 수지

파블로 카잘스의 다채로운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연 중 하나는 바로 포르투갈 출신의 뛰어난 첼리스트 길헤르미나 수지아(Guilhermina Suggia,1885~1950)입니다.

그녀는 당대에 여성 첼리스트로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며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첼로라는 공통된 열정 속에서 만난 두 거장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관심을 자아냅니다.

예술적 동반자로서의 만남으로 길헤르미나 수지아는 파블로 카잘스의 첫 번째 아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은 1906년에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악기인 첼로를 연주하는 예술가로서 깊은 교감을 나누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특히 1906년부터 1912년까지 두 사람은 파리에서 함께 살며 활동했는데, 이 기간 동안 서로에게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함께 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하며 보냈던 시간들은 두 사람의 예술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동시대를 대표하는 첼리스트로서 서로의 기량을 존중하고 배우며, 예술적 동반자로서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관계였으며, 약 6년간 이어진 이들의 관계는 카잘스의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연인, 길헤르미나 수지아의 연주모습

3. 길헤르미나와의 예고되지 않은 이별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카잘스와 길헤르미나 수지아는 1912년에 헤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이 왜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이유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카잘스가 이전부터 연주자로서 인연이 있던 수전 멕칼프와의 만남이 원인인 것으로 추측될 뿐입니다.

예술적 열정으로 하나가 되었던 두 사람이었기에, 어떤 이유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습니다.

이별 후 길헤르미나 수지아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계속해서 활동했고, 파블로 카잘스 또한 그의 위대한 음악적 여정을 이어나갔습니다.

비록 두 사람의 인연은 짧았지만, 같은 악기를 통해 만났고 한때 삶과 예술을 공유했던 그들의 관계는 카잘스의 드라마틱한 생애 속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첼로 선율 위에 피어났던 두 거장의 만남과 이별은 여전히 많은 음악연구가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습니다.

4. 첼로 거장의 두 번째 사랑, 수전 멧칼프

20세기 음악계를 빛낸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생애에는 여러 여성과의 깊은 관계가 존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저명한 메조소프라노 수전 멧칼프(Susan Metcalfe,1878~1959)는 그의 두 번째 아내로서 굴곡진 시간을 함께 보낸 인물이었습니다.

예술가로서 서로에게 매료되었던 만남부터 끝내 다른 길을 걷게 되기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드라마와 같습니다.

메조소프라노 수전 멧칼프(Susan Metcalfe)의 사진

5. 첫 만남과 열렬한 우정

수전 멧칼프는 187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저명한 뉴욕 의사의 딸로 태어나 유럽과 미국에서 음악 교육을 받으며 뛰어난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가곡과 독주회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미국 사교계에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두 예술가의 첫 만남은 1904년 뉴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카잘스가 수전의 독주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았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첼로의 거장과 촉망받는 메조소프라노는 금세 서로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고, 짧지만 ‘열렬한’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라는 공통분모가 두 사람을 빠르게 가깝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6.엇갈린 인연, 그리고 다시 이어진 만남

하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1906년 카잘스가 포르투갈 출신의 첼리스트 길헤르미나 수지아(Guilhermina Suggia)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수전과의 관계는 소원해졌습니다.

수전은 1908년 영국 왕실을 위한 공연을 포함한 유럽 순회 공연을 떠나며 물리적으로도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카잘스와 길헤르미나 수지아의 관계가 긴장 국면에 접어들자, 카잘스와 수전 멧칼프는 다시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서로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베를린에서 카잘스의 콘서트가 끝난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꺼져가던 불꽃은 다시 타올랐습니다.

7.카잘스 수전, 결혼과 파란만장했던 시간

재회 이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1914년 4월 4일 미국 뉴로셸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카잘스는 38세, 수전은 36세의 나이였습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 예술가 부부로서 활동했습니다. 종종 함께 독주회를 열었는데, 카잘스는 아내의 피아노 반주를 맡기도 했고 같은 무대에서 자신의 첼로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술로 연결된 삶은 그들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글에 따르면, 카잘스와 수전 멧칼프의 결혼 생활은 “매우 파란만장”했으며, 1928년 그들이 헤어지게 된 주된 이유는 수전이 사회주의 운동에 지나치게 열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아내의 정치적 성향을 카잘스가 견디기 어려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삶 외에 정치적 신념의 차이가 결국 두 사람을 갈라서게 만든 것입니다.

8.이별 후의 삶과 공식적인 끝

1928년에 헤어진 후, 수전 멧칼프 카잘스는 파리에서 생활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독주회는 1951년 파리에서 열렸습니다.

두 사람은 사실상 부부 관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이혼 절차는 매우 늦게 진행되어 1957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헤어진 지 약 30년 만에 법적으로도 남남이 된 것입니다.

수전 멧칼프는 말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자매들과 함께 살다가 1959년 뉴저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카잘스의 두 번째 아내로서, 그리고 뛰어난 메조소프라노 가수로서 그녀의 삶은 카잘스와의 관계를 통해 더욱 복잡하였지만 음악적으로 풍요롭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삶의 황혼녘에 찾아온 선물, 카잘스의 만년의 사랑과 인연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90세를 훌쩍 넘기는 긴 생애 동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을 뿐 아니라, 만년에도 새로운 사랑과 인연을 만나는 드라마틱한 삶을 산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미 명성과 업적을 모두 이룬 노년이었음에도, 그의 삶은 여성과의 따뜻한 사랑과 특별한 관계로 더욱 풍성해진 스토리를 제공했습니다.

1. 짧았지만 소중했던 인연, 프란체스카 비달

두 번째 아내 수전 멧칼프와 헤어진 후, 카잘스는 1954년, 79세의 나이로 프란체스카 비달(Francesca Vidal, 1880-1955)과 결혼했습니다.

일흔 아홉의 나이에 시작한 새로운 사랑은 그의 삶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프란체스카 비달은 결혼 이듬해인 1955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비록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생의 황혼녘에 만난 이 인연 또한 카잘스의 삶에 중요한 한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2. 60년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운명적인 사랑, 마르타 몬테스

프란체스카 비달을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카잘스는 그의 남은 생애를 뒤흔든 운명적인 여인을 만났습니다.

바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아름다운 첼리스트 마르타 몬테스(Marta Montañez y Martínez,1936~)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푸에르토리코가 카잘스의 어머니 고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카잘스는 마르타를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어머니의 옛 고향을 떠올린 듯 깊은 감동을 느꼈고, 그녀가 자신의 일족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습니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꼈던 것입니다.

1957년, 당시 80세였던 카잘스는 20세의 마르타와 결혼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무려 60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이 결혼은 세간의 큰 화제가 되었지만, 두 사람은 푸에르토리코에 정착하여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냈습니다.

마르타는 젊은 에너지로 카잘스의 만년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었고, 카잘스는 그녀에게 깊은 사랑과 존경을 표했습니다.

3. 스승의 위대한 유언과 특별한 인연의 계승, 유진 이스토민

마르타와의 결혼 생활 중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카잘스가 ‘나의 아들’이라 부르며 아꼈던 피아니스트 유진 이스토민(Eugene Istomin, 1925-2003)과의 특별한 인연입니다.

마르타 몬테스와 유진 이스타민

카잘스는 임종을 앞두고 그의 제자인 유진 이스토민에게 “마르타를 행복하게 해 달라”는 가슴 뭉클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스승이 아내를 제자에게 맡긴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으나, 이는 카잘스가 유진 이스토민을 얼마나 깊이 신뢰하고 아꼈는지, 그리고 마르타의 행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카잘스 사후, 마르타는 스승의 유언을 받들어 유진 이스토민과 재혼했습니다. 스승의 마지막 부탁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제자의 공경과, 그 뜻을 따른 마르타의 결단은 음악계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마르타 카잘스 이스토민은 이후 음악계의 중요한 인물로서 활동하며 카잘스의 유산을 기리고 이어가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으로 평가되며, 파블로 카잘스의 만년은 젊은 아내 마르타와의 깊은 사랑, 그리고 제자 유진 이스토민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더욱 주목 받았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과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준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스토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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