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의 연인(2/3), 파올레트 고다드

찰리 채플린의 세 번째 결혼한 아름다운 배우 파올레트 고다드.

찰리 채플린(Charlie Spencer Chaplin,1889~1977)은 영국 런던출신의 전설적인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로, 무성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찰리 채플린의 삶에는 그의 많은 여인들이 나름대로의 특별한 역할들을 했다. 배우로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주고받았고,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때로는 아픔으로서 그의 인생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주었다.

지난 글에서는 첫 번째 결혼한 밀드레드 해리스와, 약혼발표까지 했지만 비겁하게 파혼통보했던 메이콜린스, 그리고 짧은 결혼 생활이었지만 채플린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던 배우 리타그레이와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글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그 이후의 여인에 대해서 다뤄본다.

1. 리타 그레이와 이혼 후 방황하는 채플린

리타그레이와 이혼과정에서 채플린은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런 상태에서 1928년 말에 City Lights라는 영화를 거의 일 년 동안 작업을 했다. 이영화는 꽃 파는 소녀의 시력회복기금을 모으는 내용을 다루는 영화로 최종적으로 21개월이나 지나서야 완성이 됐다.

당시영화세계는 무성영화가 아닌 유성영화가 주류였으나 채플린은 이영화를 무성영화로 제작했다. 급기야 1931년 1월에 일반 출시된 <시티 라이츠> (City Lights)는 대중적이고 재정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결국 3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이 영화는 성공을 거뒀지만, 채플린은 대사 없이 또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1931년 초에 채플린은 휴가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16개월 동안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끝내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을 때 방황했다. 안절 부절 못했고 극도의 외로움을 겪었다. 심지어 중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2. 아름다운 그녀, 파울레타 고다드와 채플린

채플린이 방황하고 힘들었을 1932년 7월, 이때 채플린에게 위안이 되어주며 만난 여인이 파울레트 고다드였다.

파울레트 고다드(Paulette Goddard, 1910~1990)는 미국의 배우이며 사교계의 명사였다. 뉴욕에서 부유한 담배제조업자의 딸로 매리언 레비(Marion Lev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파올레타 고다드의 사진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외모와 연기로 대중의 주목을 받아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많은 인기는 고다드의 이른 결혼을 불러왔다. 1927년 그녀의 나이 겨우 17세에 부유한 사업가 에드가 제임스(Edgar James)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2년 만에 별거를 시작했다. 홀로 된 고다드는 왕성한 영화배우 활동을 이어갔으며, 제임스와의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1932년 법원으로부터 이혼허가를 받고 37만 달러의 상당한 금액의 합의금을 받았다.

3. 파올레트와 채플린의 만남과 헤어짐

파올레트는 프로듀서 골드윈과 계약을 맺고 여러 편의 영화를 찍었으나 의견차이로 골드윈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졌다. 그리고 새로운 프로듀서 할로치와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다.
할로치와 찰리채플린은 친한 사이여서 고다드와 채플린은 자주 만나 친해지기 시작했고 둘의 사이는 깊어졌다. 곧 공개된 이들의 관계는 언론의 큰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에서 여주인공으로 고다드를 캐스팅 했는데, 이 캐스팅은 고다드의 배우로서 인생의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고다드의 배우인생은 승승장구했다.

파올레트 고다드의 사진

둘의 사랑은 깊어졌다. 결국 1936년에 고다드는 채플린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과 고다드의 결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으며, 이유는 서로 다른 관심사였다. 그리고 가치관의 차이로 전해진다. 조용한 이혼사유의 대부분은 가치관의 차이와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아닐까. 파올레트 고다드의 놀라운 미모에도 불구하고 찰리 채플린은 1942년에 그들은 이혼을 발표했다, 결국 고다드와 이혼했다. 이혼 이후에도 고다드는 채플린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채플린의 두 아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고다드는 이혼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기경력을 계속해서 발전시켰으며 여러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통해 연기 능력을 입증했다.

모던 타임즈의 파올레트 고다드

1944년에는 버지스 메레디스와 재혼하였지만 1949년에 이혼했다. 이후 1958년에는 에릭 레마르크와 마지막으로 재혼했고, 그의 사망까지 부부 생활을 이어갔다.
고다드는 뛰어난 투자 감각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하며 연기계를 은퇴하고 레마르크와 함께 스위스로 이사 갔다. 그리고 가끔 영화에 출연하고 연기하기도 했다.

레마르크는 1970년 9월 25일 로카르노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했고, 고다드는 1990년 4월 23일에 80세의 나이에 스위스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주요 유산은 찰리 채플린과의 두 작품 및 뉴욕 대학교(European studies를 위한 기관을 후원하기 위한 2,000만 달러의 기부)에 남겼다. 또한 뉴욕 대학교의 기숙사인 “Goddard Hall”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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