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베르디의 연인, 마르게리타, 주세피나

주세페 베르디의 연인, 첫 번째 아내 마르게리타와 주세피나

주세페 베르디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로, 그의 음악은 19세기 오페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음악적 업적만큼이나 드라마틱한 개인사를 담고 있다. 베르디의 음악적 여정은 그의 첫 번째 아내 마르게리타와의는 깊은 사랑과 깊은 상실감으로 얽혀 있다.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0.10 ~ 1901.1.27.)와 그의 첫 번째 아내 마르게리타의 이야기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단순한 사랑의 서사에 그치지 않고, 음악과 인생의 깊은 유대감을 보여준다. 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첫 번째 베르디의 연인, 아내 마르게리타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인 베르디는 1813년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레론콜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베르디는 마을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에게서 음악을 배웠고, 이후 밀라노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1836년, 베르디는 마르게리타 바레치(Margherita Barezzi, 1814~1840) 와 결혼하면서 새로운 삶의 장을 열게 된다. 베르디의 나이 23살의 어린나이에 22살의 마르게리타는 그의 삶에 안정과 사랑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베르디의 연인 마르가레타의초상화

어린 두 사람은 밀라노에서 소박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두 아이, 딸 버지니아와 아들 이실리오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베르디가 두 번째 오페라 <레뇨>(Un giorno di regno)를 작곡하던 중, 마르게리타는 불행히도 뇌염으로 세상을 떠났버렸다. 그녀는 고작 2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베르디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

마르게리타의 죽음은 베르디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음악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실의에 빠져있던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의 격려 덕분에 다시 음악의 길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 결과 <나부코>(Nabucco)를 완성하게 된다.

이 오페라는 그의 경력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며,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의 음악은 마르게리타의 기억을 담고 있으며, 그녀의 상실을 통해 더욱 깊고 감정적인 표현을 이끌어내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2. 마르게리타의 이른 죽음과 주세피나의 등장

그리고 실의에 빠져있던 베르디에게 용기를 주었던 친구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의 장을 열게 된다.

주세피나(Giuseppina Strepponi, 1815~1897)는 단순한 소프라노가 아닌 베르디의 음악적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815년 이탈리아 로디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품고, 밀라노 음악원에서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하며 재능을 키웠다. 1834년, 벨칸토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세피나와 베르디의 관계는 단순한 음악적 파트너십을 넘어 깊은 우정과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베르디는 첫 번째 아내와의 사별 후 주세피나에게 매료되었고, 그녀는 그의 작품을 해석해달라고 끊임없이 베르디에 부탁하며 접근했다.

주세페  스트레포니 초상화

이같은 접근 끝에 1842년,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서 아비가일 역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주세피나는 이후 여러 이탈리아 극장에서 인기를 끌며 베르디의 작품을 통해 더욱 빛나는 경력을 쌓아갔다.

주세피나는 베르디의 작품에 대해서도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이런 비판과 조언은 베르디의 음악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845년과 1846년 사이에는 베르디에 내던 그녀의 목소리는 약해지기 시작했고 점점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 둘은 여러 차례의 이별과 재회를 거쳤지만 서로의 곁을 지키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3. 주세피나의 끊임없는 후원과 그들의 결혼

1849년, 베르디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으나 여러 상황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두 사람은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에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 부세토로 돌아왔고, 두사람은 사랑의 관계로 동거를 하고자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10년의 긴 세월을 함께 지낸 끝에, 1859년 8월 29일, 그들은 아주 작은 마을인 콜롱주 수스 살레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이 결혼식은 극비리에 치러졌고, 증인으로는 마부와 교회의 종이 참석하는 등 매우 소박한 형태로 치러졌다. 이는 베르디가 주세피나를 보호하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부세토의 저택에서 함께 살며 음악적 작업을 이어갔다. 베르디는 주세피나와 함께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하기 위해 파리로 가고, 이 시기에 ‘라 트라비아타’영화(LA TRAVIATA)의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주세피나는 그 과정에서도 베르디의 곁에서 그의 작품을 지지하며, 때로는 무대에 서기도 했다.

베르디와 주세피나의 관계는 그들의 음악적 여정에서 협업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영감이 되어 주었고, 그들의 사랑은 음악을 통해 더욱 깊어졌다.

주세피나는 베르디의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삶에 중요한 동반자였으며, 그의 성공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을 있을 수 없었다. 주세피나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1897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로 인해 베르디는 또다시 큰 슬픔에 잠겼다.

주세피나의 죽음은 그에게 두 번째로 부인과 사별하는 슬픔을 안겼고, 베르디는 주세피나의 곁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결국 그의 유언과 달리 밀라노의 묘지에 묻혔다.

베르디와 주세피나의 사랑과 결혼생활은 서로에게 깊은 의지와 음악적 지원을 제공하며, 베르디의 예술적 경로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리고 베르디는 개인적으로나 예술적으로도 주세피나와의 관계를 통해 음악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음악과 사랑이 어떻게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후세가 그의 음악을 통해 사치를 누리게 되는 원동력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How useful was this post?

Please rate me.

Average rating 5 / 5. The number of votes cast 2

No one has voted so far. Please rate your post first.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