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의 연인(1/3), 잉가 아르바드, 진 티어니.

존 F 케네디의 연인(1/3), 잉가 아르바드, 진 티어니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John Fitzgerald Kennedy, 1917.5. 29. – 1963. 11. 22)는 미합중국 제35대 대통령으로 1961년 1월 20일 44세의 최연소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63년 11월 22일 암살될 때까지 재임했다.

매사추세츠주의 저명한 케네디 가문에서 태어난 케네디는 1940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미 해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에서 보트를 지휘하다 침몰되자 동료 선원들을 구출하고 살아남아 전쟁 영웅이 되었고 해군과 해병대의 훈장을 받았다.

해군 시절의 존 에프 케네디 사진

존은 태평양 전쟁에서 입은 부상의 여파로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타고난 약골이었다. 어릴때는 늘 잔병을 달고 살았고, 주변에서는 존을 모기가 문다면 모기가 병에 걸릴 거라고 표현할 정도로 병치레를 많이 했다.

그러나 아일랜드계 이민 3세인 존의 아버지 조셉 P 케네디(Joseph Patrick Kennedy Sr, 1888~1969)는 그의 아들들을 혹독하게 단련시켰고 그의 단련에 따라 존도 점차 튼튼한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조셉은 그의 가문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으로 성장시켰다. 대통령, 상원의원 3명, 대사 3명, 등 기타 여러 대표와 정치인을 배출했다.

존 F 케네디는 잘생긴 외모에 명문가의 자제로서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 인기만큼이나 많은 여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따라서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많은 여성이 있었다. 그의 연인과의 러브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41년 11월, 존 F. 케네디가 미 해군 정보국에서 소위로 복무하고 있는 동안 매력적인 한 여인을 만난다. 그런데 그녀는 유부녀였고 하마터면 그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방해물이 될 뻔한 돌이키면, 위험한 만남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잉가 아르바드라는 언론인 겸 영화배우였고, 그녀의 남편은 영화감독 폴 페호스였다. 존은 연상의 노련한 이 여인에게 반했고, 잉가는 젊은 해군 장교의 풋풋함에 반했다. 둘은 낭만적인 관계를 시작했다.

1. 케네디와 유부녀 잉가 아르바드와 만남

잉가 마리 아르바드 페테르센 (Inga Marie Arvad Petersen, 1913 – 1973) 은 덴마크계 미국 언론인으로, 1936년 독일의 하계 올림픽에서 주최자인 아돌프 히틀러의 게스트였다. 그리고 1941년과 1942년에 존 F. 케네디와는 연인 관계였다.

존과 만날 당시에는 뉴욕의 컬럼비아저널(Columbia School of Journalism)에 다녔고 워싱턴 DC로 이사하여 워싱턴 타임즈 헤럴드(Washington Times-Herald)에서 칼럼니스트로 일하는 중이었다.

지난 1935년, 아르바드는 프리랜서 기자로서 히틀러를 인터뷰했는데, 이 사건은 그녀의 남은 인생을 굴곡지게 물들였다.


아르바드는 이전에 나치즘의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이 독일 여배우 에미 소네만과 곧 결혼할 것이라고 특종을 보도하여, 일거에 언론계에서 유명인이 되었다.

잉가 아르바드의 사진 이미지

그녀는 그 특종보도를 계기로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 받았고, 이 자리에서 히틀러의 심복인 중요한 나치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를 만난다. 괴벨스를 통해 그녀는 히틀러와의 면담을 성사시키게 된다.

아르바드는 히틀러를 인터뷰한 몇 안 되는 스칸디나비아인(덴마크인도 스칸디나비아의 민족인 바이킹족의 후예다) 중 한 명이었으며, 히틀러는 그녀에게 두세 번의 인터뷰를 허락했다.

그녀의 기사에서 히틀러에 대한 묘사는 나중에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이 기사의 표현들이 문제가 된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히틀러가 “외로워 보인다. 상냥한 마음을 담은 눈빛이 당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그 눈들은 힘차게 반짝인다.”등 호의적인 표현을 써서 기사를 게재했다.

히틀러는 그녀에게 북유럽 미녀의 완벽한 롤 모델이라며 칭찬으로 화답했다.

이와 같은 아르바드의 인연으로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에서 히틀러의 귀중한 손님으로 초청인사로 대접받았다.

미국이 입장에서는 요주의 인물인 히틀러의 일이었고, 나중에 히틀러가 제2차 대전을 일으키자 더더욱 아르바드는 잠재적인 스파이로 FBI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녀가 히틀러와 함께 있는 사진이 미 정보당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FBI는 아르바드를 추적하여 그녀가 전 영국 주재 미국 대사의 아들인 미국 소위 존 F. 케네디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FBI는 이미 아르바드가 미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는 그녀가 아돌프 히틀러와 접촉한 것을 감안할 때 그녀가 독일 스파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조사과정에서 FBI는 아르바드를 방문했던 ‘잭 소위’가 사실은 존 F. 케네디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도청을 통해 수사를 확대했다. 그러나 이미 폴 페호스와 결혼한 아르바드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2. 문제가 된 아르바드의 히틀러와의 인터뷰

미 해군당국은 아르바드를 마타 하리와 비슷하게 보았다. 해군은 아르바드가 해군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케네디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케네디를 해군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셉 P. 케네디가 영국 주재 미국 대사까지 지낸 고위인사였기 때문에 해군당국에서는 존을 함부로 처리하지 못했다. 이러한 케네디가의 명성으로 존이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고 존 F 케네디의 직접적인 잘못을 입증하지 못했고, 아르바드와 히틀러의 관계도 입증하지 못했다. 해군당국은 존과 아르바드가 군의 정보를 알지 못한다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케네디를 정보부대에서 정보와는 관계 없는 항해 부대로 전근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케네디는 1942년 1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사무직으로 발령을 받았고, 아르바드와의 관계는 몇 번의 짧은 만남 후에 끝났다

아르바드는 이후 사회 뉴스만 썼고, 히틀러의 정치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지만 히틀러와 인터뷰를 한 이둘의 관계는 그녀의 직업 생활 내내 그림자를 드리웠다.

존 F 케네디의 연인(1/3), 잉가 아르바드, 진 티어니. 1

아르바드는 1931년 카말 압델 나비(Kamal Abdel Nabi) 17세의 나이로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은 헝가리 영화감독 폴 페호스(Paul Fejos)와의 결혼이었다. 그녀는 두 편의 덴마크 영화와 1934년에는 페호스가 감독한 영화에 출연했다.

그녀가 미국을 여행할 때, 케네디를 만나 바람을 피우는 동안 페호스와는 여전히 결혼한 상태였다. 케네디를 만나는 동안 FBI의 수사로 홍역을 치른 후 1942년 6월에 페호스와 이혼한다.

그리고 1945년 5월 영국 국회의원 로버트 부스비와 약혼했다. 아르바드는 약혼을 수락했으나, 부시비는 히틀러가 한때 그녀에게 “완벽한 북유럽 미녀”라는 칭찬을 한 것과 관련하여, 그것이 자신의 정치 경력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때문에 약혼을 파기했다.

아르바드는 히틀러를 만나 두 차례 인터뷰한 것이 다이며, 히틀러 정책을 경멸한다고 했다. 특종기사의 게재로 유명인이 되었지만 히틀러와의 인터뷰가 계속해서 그의 발목을 잡는 것에 진절머리를 냈다.

그럼에도 아르바드는 1946년 56세의 미국 배우 팀 맥코이와 결혼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녀의 나이 33세 때이다. 잉가 아르바드는 1973년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 근처의 목장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존 F 케네디는 아르바드와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홍역을 치르던 중, 영화 드래건윅( Dragonwyck)세트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배우를 만나게 된다. 젊은 피가 끓어오르던 존 F 케네디는 여배우 역사상 가장 아릅답다고 하는 아름다운 미모의 그녀에게 대시한다.

3. 케네디와 미모의 여배우, 진 티어니와의 만남

케네디가 만난 진 엘리자 티어니는 미국의 영화배우, 연극배우이다. 뛰어난 미모로 찬사를 받은 그녀는 어린 나이부터 여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1944년 영화 <로라>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1945년에는 <그녀를 천국에 맡기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진 엘리자 티어니(Gene Eliza Tierney, 1920 – 1991 )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하워드 셔우드 티어니와 벨 라비니아 테일러의 딸로 태어났다. 티어니는 유럽에서 2년을 보내며 스위스 로잔에 있는 브릴랑몽 국제학교에 다녔고, 그곳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를 배웠다.

1938년 9월 그녀가 17살이었을 때 일찍이 영화계에 발을 들여 영화계에 입문했다. 1940년대는 리타 헤이워스, 라나 터너, 에바 가드너와 같은 유명배우들과 동등한 레벨의 아름다운 여주인공으로 명성이 절정에 달했다.

진 티어니 사진

그녀의 그녀의 나이 20세였을 1941년, 의상 및 패션 디자이너인 올렉 카시니(Oleg Cassini)와 결혼하려 했으나 그녀의 부모가 카시니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함께 도망쳐서 결혼했다.

그러나 티어니와 카시니는 4년 만인 1946년 10월 20일 별거했고, 11월 10일 재산 합의를 맺었다. 카시니와의 이혼은 1948년 3월에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이혼하기 전에 서로 화해했다. 그리고 5년 후인 1952년에 가서야 이혼했다.

카시니와의 결혼생활 중인 티어니는 1946년 영화 드래건윅( Dragonwyck)세트를 방문했던 젊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 존 F. 케네디를 만났다.

여자의 아름다움에 약한 케네디는 티어니와 로맨스를 시작했지만 정치적 야망이 있었다. 티어니가 불세출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배우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녀는 유부녀였다.

유부녀와의 불륜스캔들은 그의 정치이력에 도움 될 리 없었다. 그의 아버지의 기대가 컸고 지난 아르바드와의 관계 때문에 케네디 집안가족들이 식겁했기 때문에 더더욱 티어니와의 관계를 계속하여 또다시 그의 가족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이듬해 이러한 결심을 티어니에게 설명하고 결혼할 수 없다며 이별을 통보한 후 그들의 관계는 싱겁게 끝났다.

티어니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불렸고 1940년대에는 그녀의 많은 영화가 고전 영화가 되었다.

진 티어니의 사진 이미지

티어니는 1958년, 석유 재벌 W. 하워드 리를 만나 1960년 7월 11일 결혼했다. 그들은 휴스턴과 플로리다 주 델레이 비치에서 1981년 사망 할 때까지 조용히 살았다.

1960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티어니는 케네디에게 대통령 선거 승리를 축하하는 편지를 보냈다.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 티어니와의 로맨스는 길지 않게 끝났다. 캐네디는 운명적으로 그의 첫 번째 부인이 될 재클린을 만난다.

재클린과의 사랑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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