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가 사랑했던 유일한 여인,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1833.5.7.~1897.4.3.)는 독일 함부르크 출생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등 음악적으로 다재다능한 천재 음악가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주로 음악가 생활을 했으며, 낭만주의 음악의 선도적 존재였다. 그는 바흐, 베토벤과 함께 “3B”로 칭해지기도 한다.

이런 그가 사랑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 여인는 그의 스승 로베르트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이었다.
그의 개인적인 생활은 매우 비밀스럽고 제한적이어서 많은 논쟁과 추측이 존재한다.
주로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한 본 주제에서는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나, 분명한 것은 브람스는 여러 여성들과 깊은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결코 결혼하지 않았고 평생 독신생활을 유지했다.
브람스가 왜 결혼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브람스는 열정과 헌신으로 음악적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은 집중력이 매우 필요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결혼과 가정의 책임감은 창작 과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브람스는 내성적이고 비공개적인 성격으로, 사회적인 압박이나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어려움을 피하고자 결혼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
브람스는 여러 여성들과 관계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여성은 클라라 슈만이다. 그녀는 작곡가이며 브람스의 음악적 스승인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였다.
1. 브람스와 클라라의 만남
1853년 9월, 슈만과 클라라는 빈(Vienna)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이 콘서트에서 슈만은 브람스의 음악적 재능과 잠재력을 인정하고 그의 아내인 클라라에게 요한 브람스가 작곡한 일부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도록 했다. 클라라는 이후부터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슈만은 이후 브람스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며, 브람스도 슈만의 가족과 친분을 쌓고 음악적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이를 중간 매개체로 하여 클라라와 요한 브람스가 처음 만나고 그들 간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죠세핀 비크(Clara Josephine Wieck. 1819. 9. 13. ~ 1896. 5. 20)는 19세기 독일의 훌륭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다.
그녀는 독특하고 탄탄한 음악적 실력으로 시대에서 크게 인정받으며 현재까지도 그녀의 작품과 업적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클라라는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음악을 배웠으며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녀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남성 중심의 음악 세계에서 작곡 활동을 전개하고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창작하고 공연했다. 또 뛰어난 연주 기술과 감정적인 해석력은 같은 시대의 예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그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로베르트 슈만은 클라라의 뛰어나 음악적 재능에 감탄하여 그녀의 매력에 빠졌다.
급기야 1837년, 클라라가 18세가 되었을 때, 슈만은 클라라에게 청혼했고 클라라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아버지 프리드리히는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아 아버지와 법정소송까지 진행하며 1840년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은 6명의 자녀를 두고 결혼생활과 음악활동을 했으며 클라라는 남편의 작곡활동을 지원했다.
슈만은 1853년의 공연 이후 브람스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며, 브람스도 슈만의 가족과 친분을 쌓고 음악적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슈만이 중간 매개체로 하여 클라라와 요한 브람스가 처음 만나고 그들 간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클라라의 남편 슈만은 수많은 가곡을 작곡하고 멘델스존의 라이프니츠 음악원에서 강사, 드레스덴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어 활약하기도 하였다.
1854년 슈만은 건강에 이상증세가 생겼다. 슈만의 증세가 심해졌고, 그는 클라라에게 해를 끼칠까 봐 두렵다는 이유로 2월 27일, 그는 라인 강다리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다 슈만은 분데스슈타트 본 근처의 정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았다.
2년 후인 1856년, 로베르트슈만은 46세에 엔데니히의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기간 중에 브람스는 클라라와 정신이상증세가 있는 슈만사이에 중간매개체역할을 했다.
브람스는 14살 연상인 클라라에게 일종의 플라토닉한 연애를 품은 채 살았다. 그는 여러 여성들과 진한 정분을 가졌고, 괴팅겐의 아가테 폰 지볼트와는 약혼한 적도 있었지만 이내 파혼했다.
2.클라라의 남편 로베르트 슈만의 사망
클라라는 남편, 슈만이 사망한 후에는 음악 해설자로서 활약하는 한편, 작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클라라와 브람스는 로베르트 슈만의 사망 이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위로하고 지지하는 동안 그들 간의 관계는 점점 깊어져서 함께 여행도 하고, 친한 친구가 되었다.
클라라와 브람스 간의 관계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우정으로 기억되며 서로를 응원하고 영감을 주며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베르트 슈만의 사망 이후,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의 감정적인 유대감은 더욱 강해짐으로써 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는 그들 간의 우정과 예술적인 교류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편지들은 다양한 주제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일부 유명한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1854년 9월 12일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자신의 음악적 열정과 창작 과정, 그리고 그녀에 대한 애정을 표현.
-1868년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브람스는 작곡에 대한 의견과 상호 간의 지지와 격려.
-1877년 10월 15일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 브람스는 클라라가 자기 작품을 연주하는 것을 듣기를 바란다며, 응원과 감사의 말을 전함.
-1886년 클라라가 브람스에게 : 상호 간의 건강과 안부를 확인하고, 의견 교환 및 예술적인 동기부여등
이 외에도 많은 서신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개인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공개되거나 출판되진 않았다. 하지만 위 예시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들 사이의 편지는 응원, 조언, 창작 과정 공유 등 다양한 주제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 간의 깊은 관계를 보여준다.
이 같은 편지의 주고받음은 클라라 슈만이 요한 브람스의 작곡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주며, 그 영향은 여러 작품에 확연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클라라와 브람스 사이의 관계에서 클라라의 영감과 영향을 받아 작곡된 몇 가지 대표적인 곡들은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 교향곡 제1번, D단조, Op. 68: 브람스는 이 교향곡을 클라라에게 바친 첫 번째 교향곡으로 작곡했다. 클라라는 이 작품의 초고를 보면서 지지와 격려를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단조, Op. 15: 이 협주곡은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바친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다. 이 작품에는 둘 사이의 강한 우정과 연민이 반영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 독주용 피아노 소나타 No. 3, F단조, Op. 5: 이 소나타는 브람스가 젊은 시절에 작성한 대규모 피아노 작품 중 하나로, 클라라 슈만과 함께 연주하고자 했다.
- 성가 “그리고 성도들이 하늘로 올려다보니”, A장조: 이 성가는 브람스가 로베르트 슈만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곡으로, 클라라 슈만과 로베르트 슈만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4. 브람스와 클라라의 플라토닉한 사랑
클라라와 같은 여성이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음에도 브람스가 여느 여성과 사랑에 빠지지 않고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이유는, 브람스는 자신의 작곡 활동에 집중하면서 독립된 예술가로 성장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의 관계에서도 로맨틱한 감정과 깊은 우정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예측되며, 굳이 다른 이성과의 연애관계를 형성하지 않아도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클라라는 브람스가 깊은 사랑의 연애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로베르트 슈만과 이미 결혼한 상태였으며, 슈만이 사망하더라도 그들의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지기에는 여러 가지 압박과 제약이 있었다.
그리고 브람스는 자신의 작곡에 집중하면서 독립된 예술가로 성장하길 원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관계가 변화하게 되었고,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이에 로베르트 슈만의 사망을 들 수 있는 역설도 설득력 있다.
음악적 명성을 갖고 있는 클라라와 슈만의 유명도, 그리고 14살의 나이 차이의 연상여인, 그보다도 대외적으로 드러내놓기에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등이 큰 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브람스가 다른 여인에게 연정을 품었을지라도, 클라라 이외에 또 다른 사랑을 받아들이기 또한 힘들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사랑보다 음악에 집중하길 원하는 워커홀릭이었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남편의 사망으로 인해 가정의 책임을 맡게 되어 복잡한 상황을 겪었으며, 브람스와 성격과 생활양식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브람스는 비공개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클라라는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교류하는 것을 선호해 왔기 때문이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는 이러한 차이들로 인해 끝난 시기나 구체적인 사건은 명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멀어져 갔고, 클라라는 브람스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896년에 사망하였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함부르크 출생으로 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음악가 생활을 했으며, 당대 낭만주의 음악의 선도적 인물이었다. 그는 일생 동안 높은 인기와 영향력을 지녔다.
그는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작품들을 작곡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이 중에는 교향곡, 협주곡, 성악곡 등이 포함되어 있다.
클라라는 천재적인 피아노 재능으로 그녀의 명성이 전유럽에서 알려졌고, 독일 100마르크 지폐에 실려 있을 만큼 후대에도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