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하이든의 연인(2/2), 루이지아 폴첼리, 레베카 슈뢰터

요제프 하이든의 연인(2/2), 루이지아 폴첼리, 레베카 슈뢰터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 3. 31 ~ 1809. 3. 31)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린다.

하이든은 키도 작고,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는 흉터가 있었다. 그리고 콧병으로 코가 기형으로 변해 외모에 콤플렉스도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어린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되어, 재정적 안정을 얻자 사윗감으로 인기가 좋았다. 재정적 안정은 많은 교향곡을 작곡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이든은 장인의 제안으로 사랑하는 여인 대신 그녀의 언니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 결혼은 불행한 결혼생활의 시작이었고 하이든은 새로운 연인을 찾기 시작하여 악단의 유부녀를 사랑하여 10년간 연인생활을 한다.

그러나 카톨릭 교리에 묶여 두 사람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위기를 맞게 되자, 하이든에게 대시하는 미망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로맨스, 그의 두 번째 연애사를 들여다보자.

1. 루이지아와 하이든의 연인 생활

루이지아는 결혼하기 전 이미 이미 두 살배기 아들 피에트로(1777-1796)가 있었다. 에스테르하사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3년째 되던 해에 둘째 아들 안토니오(Antonio , 1783–1855)를 낳았다.

하이든과 루이지아의 연인관계라는 것을 병약한 안토니오는 알고 있었지만 별달리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루이지아와 남편 안토니오는 둘째 아들이 하이든의 친아들이라고 믿었지만, 하이든은 대외적으로 이사실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카톨릭 신자인 데다 교리를 어긴 하이든을 보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 인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자식이 없었던 하이든은 피에트로와 안토니오를 모두 좋아했다. 하이든은 그들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그들의 법적 아버지 안토니오가 1791년 죽었을 때 그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1792년, 하이든은 피에트로를 비엔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계속 가르쳤고, 귀족 가문의 피아노 교사 자리를 얻게 해 주었다. 그러나 피에트로는 1796년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둘째 안토니오는 1803년 에스테르하지 궁정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루이지아와 그녀의 남편은 1790년 9월 그녀의 고용주인 니콜라우스 1세 왕자가 사망하자 직장을 잃었다.

하이든처럼 그들은 비엔나로 이주했지만 루이지아의 남편 안토니오는 이듬해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루이지아는 하이든이 1790년 12월 영국으로 떠날 때 동행하지 않았다. 하이든과 루이지아와의 관계는 1791년까지 약 10년 동안 유지되었다.

루이지아와 떨어져 있게 되자 둘은 편지를 통해 안부를 주고 받는다. 하이든은 루이지아에게 다른 여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며 유산으로 평생연금을 지급하겠다는 편지로 약속을 한다.

이렇게 하이든은 루이지아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면서 여전히 루이지아와 결혼을 약속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그의 아내 마리아 안나 켈리가 죽는 전제에서의 결혼이다. 그렇지 않다면 카톨릭 교리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루이지아는 하이든을 떠났다. 루이지아는 곧 비엔나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와 피아첸차의 작은 극장에서 일자리를 찾아 재정적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이지 프란치 (Luigi Franchi)라는 가수와 결혼했다.

하이든은 결국 그녀에게 슬픈 편지를 써서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당신을 사로잡을 만큼 행복할 남자의 이름”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하이든은 이후 결혼하지 않았다. 루이지아와의 약속이라면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런던에서 만난 미망인 연인이 생겼다.

2. 하이든의 연인, 레베카 슈뢰더

요제프 하이든은 1791년과 1794년 두 차례 영국으로 건너가 매우 성공적인 연주회를 마쳤다.

그리고 하이든의 런던에서 거주하며 12개의 교향곡을 포함하여 가장 잘 알려진 여러 작품을 작곡했다.

하이든의 명성에 1791년 6월 29일, 레베카 슈뢰터는 하이든에게 음악 수업을 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하이든은 그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 레베카는 이후에도 무려 22차례나 하이든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의 마음을 전했다.

하이든은 당시 자유롭지 못함을 표현한다. 자신은 결혼한 상태이고 그리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루이지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베카 슈뢰터(Rebecca Schroeter,1751-1826)는 런던에 살았던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그녀는 런던에 살던 부유한 스코틀랜드 사업가 로버트 스콧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요제프 하이든의 연인(2/2), 루이지아 폴첼리, 레베카 슈뢰터 1

1775년 레베카의 부모는 독일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요한 슈뢰터를 레베카의 음악 교사로 고용했다.

요한과 레베카는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원했으나 가난한 독일 가정교사와 결혼시킬 수 없다는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가족들은 슈뢰터에게 500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하며 결혼을 포기하게 만들었지만, 그해 결국 결혼을 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길지 않았으며 자녀를 낳지 않았다. 슈뢰터는 음악 활동을 계속했으나 건강이 나빠졌다. 그리고 1788년에 사망한다. 결혼후 13년만이다.

레베카와 하이든은 런던에서 열애를 즐겼다. 레베카는 헤어지면 아쉬워 하이든에게 편지를 써서 사랑을 표현했다.

그녀의 편지는 하이든에게 열렬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으며, 하이든의 안부를 매우 간절히 궁금해했다. 그리고 레베카는 하이든의 탁월한 음악적 능력을 존경했다. 그리고 하이든의 음악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그리고 음악계에서 평가되는지를 자주 이야기했다.

하이든이 1792년 영국을 떠난 이후의 두 사람 간의 편지는 없다. 그리고 1794년 하이든이 다시 런던에 오자마자 레베카의 집 가까운 거리에 방을 얻어 밀애를 즐겼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하이든이 오스트리아에 있는 그의 집으로 떠난 1795년 이후 다시는 서로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1800년 이후에는 편지 교환 정도의 연락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95년 하이든이 마지막으로 영국을 떠나기 직전에 세 개의 피아노 트리오를 레베카 쉬뢰터부인에게 헌정한다. 레베카는 1826년 74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3. 음악가 하이든과 그의 죽음

하이든은 실용적인 농담을 좋아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그리고 키는 작았는데, 잘 생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천연두를 앓아 흉터로 얼굴이 움푹 패여 있었다.

요제프 하이든의 4중주 연주

그의 전기 작가는 하이든이 여성의 사랑을 어떻게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루이지아가 하이든의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 가난한 가수와 결혼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하이든은 1809년 5월 31일 오전 12시 40분에 77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평화롭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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