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미국의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현대문학의 거장이다. 평생을 경제적,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살았으며, 많은 여성들과의 결혼생활로 인해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소설『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여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헤밍웨이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후, 신문사의 수습기자로 6개월 동안 일했다. 고등학교 재학할 때 신문편집 경력과 기자 생활은 헤밍웨이가 글을 쓰게 된 전기가 되었다.
헤밍웨이는 평생 많은 여성들과 연인관계를 맺었다. 20세가 되기 전부터 사랑의 아픔을 겪었고 총 4번의 결혼을 했다. 대중과 많은 여성으로부터 인기를 얻으며, 미국의 대표작가로서 명성을 구가한 그의 사랑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헤밍웨이의 전쟁에서의 부상과 간호사 아그네스와의 사랑
1917년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미 육군의 입대가 거부되자, 적십자사의 구급차 운전사로 지원하여 복무하며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인 이탈리아 전선에서 군대생활을 시작했다.

1918년 6월 8일 박격포탄에 맞아 심각한 파편상을 입었지만 이탈리아군의 대피를 도운 것으로 나중에는 이탈리아 십자훈장을 받기까지 한다.
파편상 치료를 위해 야전병원에서 5일을 보낸 후 밀라노의 육군 적십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6개월을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곳에서 적십자 간호사 아그네스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아그네스 폰 쿠로프스키(Agnes Hannah von Kurowsky Stanfield, 1892~1984)는 펜실베이니아의 독일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밀라노에 있는 미국 적십자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해 나중에 아이티공화국의 간호책임자로 일을 한 여성이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아그네스는 도서관의 지루함을 참지 못해 1914년. 그녀의 나이 22살 때 간호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뉴욕시의 간호사 훈련 프로그램에 입학하여 1917년에 졸업했다. 그 후 미국 적십자사에 지원서를 냈고, 1918년 6월 15일에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다.
밀라노에서 첫 번째 임무에서 돌봐야 할 아그네스의 환자 중 한 명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 헤밍웨이였다. 아그네스는 그의 7살 연상이었고 헤밍웨이는 겨우 19살이었지만 사랑에 빠져 병상에서 약혼을 하게 되고, 귀국하면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2. 아그네스의 청혼 거절과 배신을 당한 헤밍웨이
아그네스를 이탈리아에 남겨두고 1919년 1월 헤밍웨이는 미국으로 귀국했고, 헤밍웨이는 몇 달 안에 아그네스와 결혼하는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귀국한 지 2달 만에 난데없이 아그네스로부터 편지 한 장이 날아들었다. 아그네스가 이탈리아 장교와 약혼했다고 내용이었다. 헤밍웨이는 보기 좋게 아그네스로부터 거절을 당한 것이다.
얼마 후 아그네스는 이탈리아 장교와는 파혼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뉴욕에서 1년을 보낸 후 적십자사에 의해 2년 동안 루마니아로 파견되어 근무했다.

다시 뉴욕에서 2년을 더 보낸 후 아이티로 갔다. 그곳에서 아이티 공중 보건 서비스의 간호사 책임자로 일했다. 그리고 1928년에 가서야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적십자사에 주둔하고 있던 하워드 가너와 결혼했다. 그리고 아이티를 떠나면서 이혼했다.
아그네스는 나중에는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헤밍웨이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헤밍웨이의 아들 잭은 아그네스의 관계를 아버지 어린 시절의 “큰 비극”이라고 불렀다. 이들의 이야기는 1996년 “인 러브 앤 워”( In Love and War)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산드라 블록(Sandra Bullock)이 아그네스역을 연기했다.
3. “무기여 잘 있거라”의 영감이 된 아그네스
아그네스는 1929년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에 등장하는 ‘캐서린 바클리(Catherine Barkley)’의 영감이 되었다.
그러나 아그네스의 정체는 헤밍웨이의 동생 레스터(Leicester)가 1961년 출간한 책을 통해서 헤밍웨이와의 관계가 알려졌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스크랩북에 있는 사진 몇 장을 헤밍웨이 재단에 기증하여 그들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으며, 사진은 현재 재단에 보관되어 있다.
1934년에는 윌리엠 스탠필드와 두 번째 결혼을 하여 1984 년 11월, 플로리다 주에서 92 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스탠필드와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미국 적십자사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
헤밍웨이의 전기 작가 제프리 마이어스(Jeffrey Meyers)는 헤밍웨이의 청혼에 대한 아그네스의 거절이 젊은 헤밍웨이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아그네스 이후의 여성관계에서 헤밍웨이는 아내가 버리기 전에 아내를 버리는 패턴을 갖었다.
아그네스의 거절과 배신으로 큰 충격과 상처를 입은 헤밍웨이는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일곱 살 연상의 여인을 만난다. 그녀와의 사랑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