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메타나의 연인, 카타리나
스메타나는 체코 민족 음악의 창시자로 여겨지며, 오늘날까지 체코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존경받고 있는 음악가입니다. 특히 여섯 곡의 교향시로 이루어진 ‘나의 조국’은 스메타나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제2곡 “몰다우”는 매우 인기가 있는 곡입니다. 또한 그는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비평가로서 체코 민족의 결집과 잠재력을 일깨운 중요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스메타나와 맺어진 연인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824년,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프라하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리토미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양조장을 운영하였고, 그는 일곱 명의 누나들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1. 스메타나의 연인, 카타리나와의 만남
1847년까지 그는 귀족의 음악 개인교수로 일하며, 프로크슈의 제자로 3년 반을 보냈습니다. 이 시기에 대 음악가 리스트(Franz Liszt)와의 인연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음악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스메타나는 리스트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고마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 3. 2 – 1884. 5. 12)는 카타리나 콜라로바(Kateřina Otiliia Kolářová, 1827 – 1859)와 어린 시절 함께 음악 활동을 했습니다.
둘은 프로크슈의 기관에서의 모임에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 유명한 음악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등 시간을 보내며 감정적 교류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스메타나의 기록에는 카타리나에 대한 언급이 없어 그의 감정적 상태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그의 음악 작품인 ‘바가텔’을 통해 카타리나에 대한 사랑과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스메타나는 카타리나와의 관계를 ‘순수함’, ‘슬픔’, ‘이상’, ‘욕망’ 등을 주제로 한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만남과 로맨스는 때로는 다툼으로, 때로는 갈등으로 일시적인 결별도 있었지만, 결국 스메타나는 카타리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고 갈등이 있었어도 카타리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을 반복하게 됩니다.
결국 스메타나는 자신의 음악적 경력을 쌓아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되자 카타리나와 결혼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자유로운 예술가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되어 경제적 자립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스메타나는 카타리나 오틸리아 콜라로바와 1849년 8월 29일, 세인트루이스 뉴타운 교회에서 결혼의 서약을 맺었습니다.
카타리나는 스메타나와의 결혼을 통해 그의 인생의 동반자가 되며, 그의 음악 인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됩니다.
카타리나의 존재와 애정은 단순한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스메타나의 음악에 영광과 좌절을 표현하는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결혼 후, 신혼 부부는 프라하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여 서로의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2. 스메타나와 카타리나의 결혼과 시련
1854년까지 네 명의 사랑스러운 딸이 태어나며, 그들의 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스메타나는 음악가로서의 커리어와 아버지로서의 삶을 동시에 즐기며, 카타리나와 함께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행복한 날들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850년대 중반, 스메타나의 가족은 심각한 좌절을 겪게 됩니다. 그의 네 딸 중 세 명이 잇따라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유일하게 남은 딸 조피아(Žofie)만이 그들의 곁에 있었습니다.
특히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난 딸인 베드리카(Bedřiška)의 죽음은 스메타나에게 큰 심리적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죽은 딸을 추억하며 ‘피아노 트리오 g단조’를 작곡하게 되었고, 이는 그의 음악적 유산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카타리나 역시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깊은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결핵에 걸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성격이 변화하며 부부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스메타나는 이 시기에 가족 없이 스웨덴에서의 첫 해를 보내며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프뢰이다 베네코바(Fröjda Benecková)와의 우정이 깊어지게 됩니다. 둘의 우정 어린 애정 관계는 스메타나가 두 번의 결혼을 했음에도 평생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 카타리나를 저버릴 수 없었던 스메타나는 여름마다 보헤미아를 방문하며 카타리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카타리나의 우울증과 결핵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은 그들 사이의 간극을 더욱 벌리게 됩니다.
1859년 카타리나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고, 4월, 드레스덴에서 프라하로 돌아오던 중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카타리나의 죽음은 스메타나에게 또 다른 큰 슬픔으로 다가왔고, 그의 마음속에는 깊은 공허함이 남았습니다.
그는 아내와의 추억을 간직하며 그녀의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이러한 비극적인 경험은 그가 남긴 작품들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스메타나의 인생은 카타리나와의 만남으로 시작하여,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자, 인생의 동반자로서 결혼과 함께한 행복한 순간들, 그러나 결국은 비극적인 이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스메타나 그의 영원한 우정을 갖고 있던 프뢰이다가 있지만, 첫번째 아내 카타리나가 죽은지 3개월만에 새로운 사랑을 찾아 프로포즈를 합니다. 스메타나의 다음 사랑은 다음 편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