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 1812 Overture)은 1880년 여름 산업예술박람회를 위하여 쓰여진 순전히 상업적 목적으로 작곡된 곡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곡은 나를 대표하는 곡이 되었고 나의 조국 러시아국민들이 아주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

1. 새로운 시작

1880년의 여름, 나 차이콥스키( Piotr, Ilyitch Tchaikovsky 1840 ~ 1893)는 모스크바의 한 작곡가로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기상곡’을 마친 후, 내 마음속에는 음악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지만, 이번에는 다소 복잡한 의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친구이자 음악 감독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i Rubinshtein, 1835~1881)에게서 온 요청이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산업 예술 박람회를 위한 음악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축전을 위해 곡을 작곡하는 건 나에게 그리 큰 흥미를 주지 않았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나는 폰 메크 부인(Nadezhda von Meck, 1831~1894)에게 보낸 편지에서 털어놓았다. “아무런 애정도 없이 작곡한 이 곡은 그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사실 요즘 폰 메크와는 사이가 그닥 좋지 않지 않다. 내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는 듯하다.

내 마음속의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이렇게 작곡한 음악이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난 작곡하기로 마음 먹고 작곡에 들어갔다.

2. 역사 속으로의 여행

그런데 이 곡의 제목, ‘1812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즉 조국 러시아의 전쟁을 다룬 작품이었다.

그 전쟁의 격렬한 전투 장면을 음악으로 재현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나는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바라보며 음침한 기운을 뿜어내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군대가 처음에는 의기양양했지만,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점점 위축되는 과정을 그려내야 했다.

첫 번째 부분은 라르고로 시작되었다. 비올라와 첼로의 장중한 주제가 흐르며, 러시아 정교 성가의 선율이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주여,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 이 음악은 러시아 민중의 고난을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3. 격렬한 전투의 재현

이제 나는 ‘알레그로 주스토(allegro giusto,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연주하라)’로 넘어갔다. 템포가 급속히 빨라지며 전투의 긴박함을 묘사했다.

프랑스군의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민속의 선율이 교차하며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나의 손가락은 피아노 위에서 춤추듯 움직였고, 마음속에서는 전투의 생생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1812년 서곡의 무대인 프랑스 러시아 전쟁을 그린 이미지

“대포 소리와 함께 프랑스군이 퇴각하는 순간을 어떻게 표현할까?” 나는 고민했다. 대포 소리는 단순한 효과에 그치지 않고, 음악의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실내에서 연주할 때 대포를 쏠 수는 없으니, 큰북으로 대체해야 했다.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누가 대포를 쏴야 할까?”라는 논쟁이 오갔고, 나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 누가 치던 어떤가? 군악대에서 한 명 차출하면 되지 않느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4. 승리의 환희

마침내, 곡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알레그로 비바체(allegro vivace, 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 연주하하라)’의 힘찬 선율이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러시아군의 승리에 대한 기쁨이 음악 속에 녹아들었다.

교회 종소리와 함께 금관이 힘차게 연주되었고, 나는 그 순간의 환희를 느꼈다. “신이시여 차르(tsar, 러시아 황제)를 보호하소서,” 이 찬가가 울려 퍼지며, 나의 마음속의 불안이 사라졌다.

1812년 보르디노 전투를 재연하는 러시아군 사진

이 곡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렬한 비트와 장엄한 음악적 요소들이 아닐까?

내가 처음에는 아무런 애정도 없이 작곡한 곡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담긴 감정이 깊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역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5. 1812년 서곡의 의미

내가 1880년 작곡한 ‘1812년 서곡(1812 Overture)’은 나에게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과 러시아의 역사,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담아낸 예술이 되었다.

비록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시작했지만, 이 곡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음악은 나에게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닌, 인생의 깊이와 의미를 전해주는 소중한 언어가 되었다.

이제 나는 이 곡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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