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연인(3/3)귀차르디,안토니 브렌타노,안나 마리, 불멸의 연인

 

베토벤은 아버지 요한 판 베토벤이 테너 가수로 활동하는 음악가 집안의 일곱 자녀 중 두 번째로 태어났다. 이때의 의료환경에서 루트비히와 두 명의 남동생 만이 유아기에서 살아남았고 루드비히는 아버지 요한에게서 처음 음악을 배웠다.

흔히 어린 베토벤을 이야기할 때 “건반 악기 앞에 세워 놓았고 아이는 대개 울고 있었다”라고 회자되며 아버지 요한을 가혹하게 베토벤을 교육했던 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한은 혹독했을지 모르지만 아들 루드비히의 두드러진 음악적 재능을 일찍 알아차리고, 베토벤이 5세가 되던 해부터는 같은 궁정 동료 등 유능한 교사들에게 재빨리 루드비히의 음악교육을 맡겼다.
베토벤의 어린 시절은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같은 가정환경 안에서 성인이 된 루드비히의 몰입형 성격형성은 음악창작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청력을 잃으면서는 더욱 자신만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베토벤의 연인과 관련하여,이전 두 편에서는 베토벤의 풋사랑 엘레오노레 브로이닝부터 가슴 시린 베토벤의 사랑이던 요제피네 브룬스비크와 테레제 브룬스비크, 베티나 아르님 등을 다뤘다. 이번 편에서는 귀차르디와 안토니 등 다른 여인들과 ‘불멸의 연인’에 대해서 다뤄보겠다.

1.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귀차르디

줄리에타 귀차르디(Giulietta Guicciardi, 1782-1856년)는 오스트리아의 여성 백작으로, 1801년에 베토벤의 제자가 되었다. 요제피네 브룬스비크 자매와는 사촌이며 친구관계이다
귀차르디와 테레제, 요제피네 자매와 매우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베토벤이었지만, 요제피네가 베토벤의 구애에도 다임 백작과 결혼한 이후 베토벤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귀차르디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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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마음을 담은 편지에서도 볼 수 있는데, 1801년 11월 친구이며 베토벤의 첫사랑이었던 엘레오노네 브로이닝과 나중에 결혼한 프란츠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에는 귀차르디와 만남의 기쁨을 담은 내용이 있다.
“내 인생은 다시 한번 기쁘고, 난 다시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 틈에 서 그녀를 우러러보고 있다네.
지난 2년 동안(요제피네의 결혼으로 상처받은 기간) 내 삶이 얼마나 쓸쓸하고 슬펐는지 믿기 어려울 것이지만 이 변화는 귀엽고 매력적인 소녀 귀차르디에 의해 기쁨으로 바뀌었다네.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녀를 사랑하네.
2년 만에 행복의 순간을 즐기고 있으며, 난생처음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느끼고 있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나와는 신분이 다르고, 지금은 결혼할 수 없다네.”

당시 귀차르디는 베토벤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자신에게 안절부절못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즐겼다고 한다.
그녀가 진심으로 베토벤을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혼 얘기까지 오고 간 걸 보면 둘 간의 애정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분차이로 귀차르디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하여 둘 간의 관계가 끝나버렸다. 어쩌면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귀차르디는 곧바로 오스트리라 귀족 갈렌베르크 백작(Wenzel von Gallenberg)과 결혼해 버렸다.갈렌베르크는 작곡도 했는데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이런 귀차르디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베토벤은 또 한번 충격에 빠졌다.

귀차르디가 유명한 것은 베토벤 불후의 명곡 <월광 피아노 소나타 Op.13 c단조>를 귀차르디에게 헌정(1801년)했기 때문이다. 이 월광소나타는 그녀를 위해 쓴 작품이 아니었지만, 당시 귀차르디에게 연정을 품었던 베토벤이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광 소나타>는 고전 시대의 피아노 소나타의 범주에서 벗어나 낭만 소나타를 예견하는 귀중한 사례로서 역사를 바꾸어 놓은 걸작 중 걸작이다.

베토벤의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귀차르디의 결혼 바로 다음 해에는 베토벤의 옛사랑이던 요제피네가 미망인이 되어 돌아왔다. 마음을 다잡고 병주고 약주는 요제피네에게 대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귀차르디 부부는 결혼후 비교적 평탄하게 결혼생활을 했으며 1806년에는 갈렌베르크가 당시 나폴레옹 정권으로부터 인정받아 이탈리아 나폴리시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나폴리로 이주했다.
1821년에는 빈의 왕립 오페라 극장의 부감독으로 임명되면서 귀차르디가 다시 빈에 돌아오게 된다.

일설에 따르면 귀차르디가 베토벤에게 만나자고 했지만 베토벤이 이를 거절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후에 둘이 만났다는 정황은 없다.

2.아름답고 귀여운 테레제 말파티

베토벤이 귓병과 각종 질병 때문에 괴로워하던 1809년, 17세의 아름다운 소녀 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 1792-1851)가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면서 둘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녀의 삼촌 요한 말파티는 베토벤의 주치의로 내과의사였는데 그의 소개에 의한 베토벤과 말라티의 인연이었다.

테레제 말파티는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테레제와 여동생 안나는 당시 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매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베토벤은 40살이었다. 23살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그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사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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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분의 차이와 그보다 더 심각한 나이 차이, 그리고 베토벤의 귓병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이 반대했다.
베토벤은 테레제를 만나지 못하게 되자 괴로워하다 이듬해 5월에는 테레제에게 청혼까지 시도해 본다.

테레제는 베토벤의 청혼에 오스트리아 귀족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며 거절한다

그 후 베토벤은 1810년 4월 27일에 테레제에게 곡 하나를 헌정하는데, 이 곡이 바로 그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다

이후 베토벤은 1810년 5월경, 이별을 의미하는 서신을 테레제에게 보내게 된다. 베토벤 스스로도 본인이 나이도 많고 병에 시달리는 처지가 아닌가, 그런 자신이 어린 나이의 테레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테레제는 베토벤과 헤어지고 6년 후인 1816년, 오스트리아 귀족과 결혼했다.

3.친구의 아내, 안토니 브렌타노

유부녀인 안토니 브렌타노(Antonie Brentano, 1780 – 1869)는 빈에서 태어났다.

안토니는 여덟살 때 어머니가 전염병으로 사망한다. 1796년 상인 프란츠 브렌타노를 만난 후 1798년에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의 나이 18세 때이다.

결혼한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살던 안노니 브렌타노는 병으로 쓰러진 아버지, 요한 버겐스탁(Johann Melchior Edler von Birkenstock)을 돌보기 위해 빈으로 왔지만 아버지는 1809년 사망하고 만다. 아버지는 외교관, 교육개혁자이면서 미술품 수집가였다.

안토니 부부는 어버지의 유품, 특히 그가 생전에 수집했던 미술품을 정리하기 위해 1812년에 빈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프란츠 브렌타노와 베토벤과의 우정은 각별했다. 베토벤은 프란츠의 집에 자주 초대되었고 병약한 안토니를 위해 피아노 연주도 해주었다. 그런 베토벤을 향한 안토니의 감정이 점차 음악가로서의 존경에서 사랑으로 변했다. 베토벤도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사랑했다.

안토니는 여덟살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일찌감치 나이 많은 남편을 만나 30살이 될 때까지 뜨거운 사랑을 느껴볼 기회가 없었던 안토니였다.

그런데 베토벤이라는 음악가인 남자를 만나자 본격적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녀는 과감하게 자신의 애정에 불을 지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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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안토니는 4자녀의 엄마였는데, 베토벤에게 과감하게 청혼까지 했다고 한다. 이때 안토니의 남편, 프란츠가 빈을 떠나자 테플리츠에 머물던 베토벤은 프라하에서 브렌타노와 이때다 하며 신나게 밀회를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네 자녀의 엄마인 유부녀와 노총각인 베토벤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지기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베토벤은 남편 프란츠 브렌타노와 절친 아닌가. 베토벤은 안토니를 사랑했지만 소중한 친구 프란츠의 아내를 빼았을 수는 없었다.

친구 프란츠는 베토벤의 전 애인 귀차르디와의 관계에서 편지를 보내 감정을 설명했던 친구였다.

이런 상황의 한계에 부닥친 두 사람은 얼마 후 브렌타노 부부가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버리면서 연애관계는 끝난다.

재밌는 것은, 사랑꾼 베토벤이 테플리츠에 머물던 기간에 자신의 필생의 연인, 요세피네 브룬스비크도 만났으며, 베를린 출신 소프라노 가수, 아말리 제발트와도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불멸의 연인’이라는 편지를 썼던 것이다.

안토니 브렌타노는 베토벤에게 음악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했다. 베토벤은 피아노 변주곡 디아벨리 변주곡(op. 120)을 안토니에게 헌정했고, 그녀의 딸 막시밀리안에게는 피아노 소나타 30번(op. 109)과 피아노 삼중주 알레그레토 악장(WoO 39)을 헌정했다.

4.음악적 조언과 매니저역할의 후원자, 안나 마리 폰 에르되디

1803년, 안나 마리(Anna Marie von Erdődy, 1779-1837)는 줄리에타 귀차르디와 헤어지고 실의에 빠져 있던 베토벤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때 베토벤의 나이 33살 때의 일이다.

그녀는 베토벤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최고의 관객이자, 그에게 진지한 음악적 조언을 해주는 최고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리고 안나 마리는 베토벤이 평생 빈에 머무르면서 음악활동을 하게 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베토벤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리히노프스키 공작과의 사이가 멀어지면서 1807년부터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은 상태였다.

안나마리는 부자귀족을 설득하여 베토벤이 빈에 계속 머무를 경우 연 4,000 플로린의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후원약속을 얻어냈다. 그 덕분에 베토벤은 궁정악장 자리를 포기하고 평생 빈에 머무르면서 작품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다.

1807년, 안나 마리의 남편 페테르가 사업상의 이유로 빈을 떠나 1812년에야 빈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 동안 자유롭게 된 베토벤과 안나 마리가 단순한 친분을 넘어 이성적으로 깊은 관계로 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1807년은 베토벤이 브룬스비크 자매와 모두 결별한 시기이기도 했으니,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

1808년에는 그녀의 저택에 머무르면서 음악모임과 사교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수의 연구가들은 이 안나 마리와 친하게 지냈던 기간을 베토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풍족한 시기로 보고 있는데 이성적 관계 없이 행복하게 보냈다고 보는 건 사랑꾼 베토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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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남편이 돌아온 이후에는 더 이상 두 사람이 연락했다는 기록은 없다.

5.테블리츠의 잠깐의 만남, 아말리 제발트

아말리 제발트(Amalie Sebald, 1787-1846)는 1811년 베토벤이 테플리츠에 머무르고 있던 시기에 인연을 맺는다.

아말리는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베를린 소프라노 가수였다.
이곳에서 베토벤과 아말리는 금세 친해졌으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두 사람의 서신을 보면 다른 여인들과 만나면서도 적극적으로 사귀는 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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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둘은 어떻게 사이가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특별한 기약이 없이 베토벤과 아말리는 다시 빈과 베를린으로 각자의 길로 돌아갔으며 두 사람의 관계도 그대로 끝났다.
이후 아말리는 1815년 공무원인 루트비히 크라우제(Ludwig Krause)와 결혼한다.

6.‘불멸의 연인’

불멸의 연인에게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그대에게 잠시 내 마음을 전하려 하오.
내일이 되어야 내 숙소가 확실하게 정해질 것 같구려.
왜 이런 깊은 슬픔이 있어야 하는지.
우리가 완전히 하나가 된다면, 나도 그대도 이처럼 고통을 겪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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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편지는 수신인 주소도 없고 봉투도 발견되지 않아 수신인에게 보내지지 않은 편지이다.
수신자는 “나의 천사”이며 “불멸의 연인”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 표현은 편지글 중에 한 번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 베토벤 특유의 표현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편지는 베토벤이 현재의 체코 테플리체에서 1812년 7월 6일부터 이틀에 걸쳐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지 작성 시기와 장소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었는데 1950년쯤에 종이의 워터마크 분석을 통해 날짜와 장소를 추론해 놓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작은 편지지 열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망한 베토벤의 유품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 베토벤의 비서이자 훗날 베토벤의 전기작가가 된 안톤 쉰들러가 발견하여 갖고 있었다.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1812년은 베토벤은 귀족들에게 음악 활동을 위한 재정적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여타 작곡가들과는 달리 그 귀족들에게 예속되지는 않았다. 베토벤 작품의 악보를 유럽 각국 출판사들이 인쇄해 판매한 덕이었다.

덕분에 베토벤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작품활동과 그가 좋아하는 많은 여인들을 만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던 시기이다.

편지를 갖고 있던 쉰들러는 1840년 베토벤 전기에서 ‘줄리에타 귀차르디’가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의 수취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쉰들러의 이 의견에 귀차르디의 사촌 누이이며 요제피네의 언니 테레제 브룬스비크가 곧바로 의문을 제기하며 귀차르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안톤 쉰들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동생 요제피네와 베토벤의 오랜 열정적 연애관계에 대해 곁에서 지켜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귀차르디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테레제의 기록에서도 자신이 베토벤에 열렬한 찬사와 은밀한 사랑으로 표현하고 감탄과 숭배로 가득 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로 인해 테레제가 불멸의 연인이라는 주장도 많다. 그리고 테레제 또한 편지수신자일 가능성도 있었기에 쉰들러의 주장에 반대의견을 내놓은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강력한 연인이었던 안토니 브렌타노가 유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 주장은 1977년, 미국 베토벤 학자인 메이너드 솔로몬(Maynard Solomon)의 논문에 의해서이다.

베토벤의 가곡 <연인에게 Die Geliebte WoO. 140>는 기타로 반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인데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후보 중 기타를 치는 사람은 안토니 브렌타노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꾼인 베토벤은 그가 유명세를 탔던 덕분에 수많은 여성과 연인관계를 맺었다.
베토벤의 첫사랑인 엘레오노레 브로이닝부터 줄리에타 귀차르디, 테레제,요제피네 브룬스비크, 베티나 아르님, 테레제 말라티, 안토니 브렌타노,안나마리 에르되디, 아말리제발트까지…재능과 함께 여복도 많은 베토벤이다.

많은 여인중 베토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요제피네이다. 요제피네를 편지의 주인공으로 꼽는 연구도 있다.
베토벤의 가슴속에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있는 요제피네에게 가슴시린 사연의 편지를 써 놓고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신인이 누구일까하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실제 편지의 수신인이 누구이든 간에 베토벤의 인생에서 ‘진정한’ 불멸의 연인을 딱 한 명 꼽는다면 바로 요제피네가 아닐까.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작곡가 베토벤의 연애사를 들추어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이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베토벤의 상처 많은 인생을 치유하기 위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준 뮤즈가 어느 여인이었을지라도 베토벤이 최고의 음악작품을 만들게 한 원천이었을 것이다. 후세에서 최고의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에겐 소중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사랑의 아픔마저도 베토벤의 걸작을 만든 원천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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