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연인(1/3), 엘레오노네, 요제피네 브룬스비크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년)은 신성로마제국의 쾰른선제후국의 수도, 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궁정의 악장을 지냈고 아버지는 궁정의 가수였다가 궁정의 악장까지 지냈지만 심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할아버지는 베토벤을 귀여워해줬지만 4살 때 죽었다.
아버지 요한은 어린 베토벤의 재능을 이용해 돈과 명성을 얻을 속셈으로 어린 베토벤에게 가혹한 방식으로 피아노를 연습시켰다.
베토벤은 청력 상실 등의 음악적 활동장애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음악적 천재성으로 그가 후세에 남겨준 음악적 유산은 실로 위대하다.
베토벤은 괴팍한 성격과 고결하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음악가이다.
음악에 있어 성인(樂聖)인 베토벤에게는 이성으로서의 연인은 누가 있었을까?
베토벤에게 있어 여인이라 하면 ‘불멸의 연인’이라는 말이 유명한데 이 말이 알려진 것은 베토벤이 1827년 사망하고 난 후, 그의 유품에서 ‘불멸의 연인에게’라는 제목의 편지가 발견되면서부터이다.
많은 가설과 추측이 있고 베토벤을 연구하는 음악학자들이 편지의 내용 연구결과 의견이 분분하고 이 여성의 정체는 명확하지 않다. 불멸의 편지내용에는 특정하여 수신인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여인이 베토벤의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베토벤과 가깝게 지냈던 베토벤의 연인, 특히 ‘불멸의 연인’이 누구였는지를 논하는 것을 한편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여러 편에 거쳐 그동안 베토벤 연구가들이 내놓은 객관적인 사실에 맞춰 알아보도록 하는데 보통사람 같으면 기록에 남지 않을 여인이었더라도 베토벤이라는 위대한 음악가이기에 유명세를 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1.베토벤의 첫 번째 연인 엘레오노네 폰 브로이닝
베토벤이 16세였을 때,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아버지 때문에 가정생활이 무척 힘들었던 베토벤은 평생 친구인 프란츠 베겔러의 소개로 브로이닝 집안(von Breuning)의 피아노 선생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집안보다 훨씬 편안하고 교양 있는 브로우닝 집안에서 자주 머물렀으며 이 집안의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소년 베토벤은 여기서 문학과 교양지식을 익혔다.
그러다가 베토벤의 나이는 19세 때 브로이닝 집안의 장녀였던 1살 아래였던 엘레오노레(Eleonore von Breuning 1771 – 1841)에게 연정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엘레오노레는 베토벤의 사실상 첫사랑이다.
둘은 얼마 동안은 진심으로 사귄 듯하지만, 아직 두 사람 모두 어린 나이인데다 신분의 차이도 있어 결혼까지 가지는 않았다.

연인관계가 끝난 후에도 친구로서 두 사람의 우정은 지속되었는데, 1792년 베토벤이 빈으로 떠날 당시 엘레오노레는 우정을 상징하는 시집을 선물도 했으며, 베토벤이 빈으로 떠난 후에는 편지를 교환하기도 했다.
다만 떠나기 직전에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크게 싸웠다고 하는데, 이듬해 화해하기 위해 베토벤이 보낸 편지에는 그녀가 준 스카프 등의 선물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있다한다.
이후 1802년, 엘레오노레는 브로이닝 집안에 베토벤을 소개해준 친구, 프란츠 베겔러와 결혼하였으며, 이후 남편을 따라 독일 서부 코블렌츠로 떠나 평생 거기서 살았다.

베토벤이 빈으로 떠난 이후 엘레오노레와 베토벤은 평생 다시 만나지 못했으며, 베토벤이 죽기 2년 전 엘레오노레가 남편을 통해 ‘한번 만납시다’라는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는데, 결국 두 사람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베토벤이 죽기 1년 전에는 베토벤은 빈으로 떠날 때 엘레오노네가 준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으며 젊은 날의 추억이 나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친구 베겔러에게 보내기도 했다.
비록 소년시절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첫사랑이었지만, 친구인 베겔러가 평생친구로 지낸 덕분에 베토벤의 여인 가운데 그가 죽을 때까지 인연이 닿았던 거의 유일한 여인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이후 그녀에게 피가로의 결혼 주제에 의한 변주곡(피아노와 바이올린 2중주곡, WoO 40), 피아노 론도(WoO 41), 피아노 소나타(WoO 51)등을 헌정했다. 아무래도 인생 초반에 사귄 사람이기 때문에 헌정된 곡들도 모두 초기 작품에 해당된다.
2.두 번째 연인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
1799년 그의 나이 29세 때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전 후원자인 라이문트 베츨라어 남작의 집에서 악명 높은 피아노 “결투”에 참가, 거장 요제프 뵐플(Joseph Johann Baptist Wölfl, 1773–1812)에 대항하여 승리했다.
이 같은 베토벤의 명성에 헝가리 귀족인 안나 브룬스비크(Anna Brunswik)가 두 자매를 빈으로 데려와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달라고 의뢰하였다. 이 인연은 베토벤과 브룬스비크 가문과의 연애사에 있어 비극적인 결말의 시작이 된다.
베토벤은 피아노 제자인 작은 딸 요제피네(Josefine Brunswik von Korompa, 1779–1821)와 사랑에 빠졌다. 요제피네는 베토벤의 여인들 중에 베토벤과 가장 각별했으며 또 가장 험난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여인이다. 또한 베토벤의 여인들 가운데 베토벤보다 일찍 사망한 유일한 사람이다.

요제피네에게 빠져든 베토벤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데, 문제는 요제피네가 피아노를 배울 당시에 이미 자신보다 무려 27살이나 많은 부유한 귀족과 일종의 정략결혼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제피네는 피아노를 배우면서 베토벤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지만 어머니의 설득으로 요제프 다임(Josef Deym, 1752–1804) 백작과 얼마 후 결혼을 했다. 이 결혼은 요제피네의 험난한 인생의 서막에 불과했다.
요제피네의 결혼은 누가 보기에도 불행하였으나, 베토벤은 이후에도 이들의 가정에 자주 방문하여 교습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였다.
다임백작 부부는 세 자녀를 두었지만 요제피네가 넷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 요제프백작이 급작스럽게 폐렴으로 1804년에 사망하고 만다.
다임이 죽은 뒤에 요제피네와 베토벤은 다시 인연을 이어 나간다.
베토벤을 만나면서부터 베토벤을 좋아했던 요제피네는 베토벤의 거듭된 구애에 결국 결혼 약속까지는 하게 되는데, 이는 베토벤의 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약혼이었다.
그러나 이 약혼은 브룬스비크 가문의 반대 압력과 베토벤의 독특하고 괴팍한 성격이 본인이 낳은 자녀들의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고민하던 요제피네는 결국 베토벤과의 결혼을 단념하고 소극적으로 돌아서고 만다.

이러던 중 요세피네는 그녀의 자녀들의 가정교사이던 하급 귀족 크리스토프 폰 슈타켈베르크(Christoph von Stackelberg) 남작과 연애를 시작한다. 이 또한 브룬스비크 가문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요제피네가 슈타겔베르크의 아기를 임신하는 바람에 1808년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성격차이로 빈번한 마찰이 있었고 딸 둘을 낳고 별거를 하게 된다. 별거 중이던 슈타켈베르크는 1810년부터 에스토니아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슈타켈베르크가 이후에는 재정적으로 파산하면서 둘의 결혼 생활은 사실상 파탄이 난다.
합의하여 헤어지고 난 후 요제피네는 홀로 많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생활고에 시달렸다. 마침 남편 슈타켈베르크가 파산상태에서 벗어나고 재산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 요제피네는 1812년 말 다시 재결합을 원했으며 슈타켈베르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재결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슈타켈베르크는 석연치 않은 셋 째딸 미노나의 출생비밀을 의심하고 요제피네의 곁을 떠난다.
험난한 가정생활에 요제피네는 제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나중에는 수학교사의 사생아를 낳는 등 혼잡한 생활을 하다가 첫 남편의 자식에게서도 버림받고 슈타켈베르크는 그들 사이에 낳은 딸 셋을 빼앗아 가버렸다.
이후에도 그녀의 불행은 계속되었는데 그녀를 돌봐주던 언니 테레제도 떠나고 친정인 브룬스비크가에서도 버람받은 채 42세라는 나이인 1821년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요제피네가 죽을 당시 베토벤은 어렵게 양육권을 획득한 조카 카를의 교육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두 사람의 애정관계는 이미 먼 옛날일이며 베토벤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불멸의 연인’ 편지의 실제 수신인이 누구이든 간에 베토벤의 인생에서 ‘진정한’ 불멸의 연인을 딱 한 명 꼽는다면 바로 이 요제피네일 것이다. 그녀야말로 베토벤이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요제피네의 언니인 테레제는 일기와 서간등의 기록을 많이 남겨두었다. 특히 동생인 요제피네와 베토벤의 애정과 관련하여 많은 글을 비교적 자세히 남겨두었는데 이에 대해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언니 테레제의 이와 같은 기록 덕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