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이 끼친 음악적 영향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아들 베토벤에게 전수하고자 했다. 어린 베토벤은 아버지의 엄격한 지도 아래 음악 실력을 키워나갔다. 이러한 음악 교육은 베토벤의 천재성을 발현하는 데 결과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가 베토벤의 천재적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의 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과 그의 아버지의 요한과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1. 베토벤과 그의 아버지 요한

베토벤의 할아버지 루트비히는 오스트리아 브라반트 공국의 메헬렌 출신 음악가로, 21세에 본으로 이주하여 궁정에서 베이스 가수로 일했다.

그의 음악적 재능으로 1761년에 카펠마이스터(음악 감독)가 되어 본의 저명한 음악가가 되었고, 그의 아들, 즉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은 같은 음악 기관에서 테너로 일하며,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키보드와 바이올린 레슨을 했다.

요한은 1767년에 마리아 막달레나 케베리히(베토벤의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녀는 궁정에서 수석 요리사를 지낸 하인리히 케베리히의 딸이었다. 이 결혼으로 1770년 12월 16일 본에서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이 태어나게 된다.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이 혹독한 교육을 시킨 루비비히의 13세대의 초상화

요한은 그의 아버지의 후광으로 궁정음악가로 일했지만 알코올 중독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들 루드비히 베토벤이 있었다.

2. 요한의 엄격하고 가혹한 음악 교육

요한은 아들 베토벤에게 음악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같은 노력은 아들을 돈벌이에 쓰기 위한 의도가 컸다.

요한은 재능 있는 젊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함께 여행하며 성공을 거둔 레오폴트 모차르트를 알고 있었고, 그들의 명성과 재산을 따라잡고 싶어 했다.

그러나 요한은 여러 증언에 따르면 학대하는 아버지였다. 루트비히의 어린 시절 친구 중 한 명은 “루트비히가 피아노 앞에 앉도록 강요하기 위해 때리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가끔 연습을 게을리하며 말을 듣지 않는 루트비히를 지하실에 가두기도 했으며, 어린 루트비히를 침대에서 끌어내어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피아노를 치게 하기도 했다.

요한 반 베토벤은 아들 루트비히에게 이렇게 매우 엄격하고 혹독한 음악 교육을 시켰다. 어린 베토벤에게 힘든 레슨을 강요했다.

때로는 베토벤이 견디기 힘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요한의 교육 방식은 매우 엄격하고 가혹했지만, 그 목적은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고강도 교육 덕분에 베토벤의 음악 실력은 빠르게 발전했다. 아버지 요한은 아들의 천재적인 음악 재능갖고 있음이 좀 더 명확해지자, 부족한 가정 형편의 생계를 위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1778년 3월, 베토벤의 첫 공식 공연 포스터에는 그가 6살이라고 기재를 했지만 실제로는 7살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요한은 아들의 나이를 고의적으로 낮추어 표기함으로써, 베토벤을 천재 아동 음악가임을 극적으로 홍보하고자 의도 했던 것이다.

3. 베토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음악적 영향

베토벤은 아버지 요한의 엄격한 지도 아래 베토벤은 음악을 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지도에 한계를 느낀 베토벤은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점점 불만을 느끼게 되었고, 다른 전문적이고 보다 실력 있는 다른 선생님들을 찾아 공부하게 되었다.

그가 배운 선생님들로는 궁정 오르가니스트 질스 반 덴 에덴, 키보드 레슨 교사 토비아스 프리드리히 파이퍼, 바이올린과 비올라 선생 프란츠 로반티니 등이 있었다.

특히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는 베토벤에게 작곡을 가르치고, 그의 첫 작품 출판을 도와주기도 했다.

이처럼 베토벤은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4. 아버지의 죽음과 베토벤

아버지 요한은 자식에겐 혹독하고 가혹하게 교육을 시킨 반면 본인에게는 관대했다. 그의 알코올 중독은 베토벤의 가정생활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요한은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고, 그의 아내 마리아가 1787년에 사망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 후 가족은 생계를 위해 어린 루트비히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베토벤은 상류층 가족인 폰 브로이닝 가족과 친구가 되면서, 그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요한은 루트비히가 하이든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빈으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792년에 사망했다.

그의 고용주인 오스트리아 프란츠 대공은 친구에게 “주류 소비세 수입은 요한의 죽음으로 줄어드는 손실을 입게 되었다”라고 비꼬는 편지를 쓸 정도였다.

이는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이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사망했음을 시사한다.

자신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치던 아버지 요한의 죽음은 베토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베토벤은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본을 떠나 비엔나로 음악적 활동을 했다.

그곳에서 하이든의 제자가 되어 작곡 공부를 이어갔고,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루드비히 베토벤은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의 엄격하고 가혹한 지도와 불우한 가정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은 그를 위대한 작곡가로 이끌었고,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사랑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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