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의 연인, 리사마리, 데비로우

마이클 잭슨의 연인, 리사마리프레슬리, 데비로우마이클 잭슨의 연인은 누가 있었을까?

마이클 잭슨이 팝업계의 슈퍼스타로 활동하면서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스캔들이 있었지만 가십정도가 아니고 그의 삶에 연인으로서 영향을 미친 주요 인물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마리 프레슬리(Lisa Marie Presley)와 그의 아내 데비 로우(Déborah Jeanne Rowe)라 할수 있다.

그리고, 한때 사랑한 부룩쉴즈, 마돈나등이 있는데, 일부는 연인, 친구로서, 음악활동의 협업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으며, 각각의 인물들은 그와의 관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이들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수집하여 정리하여 재구성하였다.

1. 마이클 잭슨의 첫번째 여인 리사마리 프레슬리

잭슨의 어머니 캐서린 잭슨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가정부로 일했다. 잭슨의 아버지 조지프 잭슨은 철강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였으며 개인적 취미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의 밴드활동을 통해 음악적 성공을 꾀하고자도 했다.


1963년 마이클은 아버지에 의해 형제 재키, 티토, 말론, 저메인이 결성되어 엄격하게 훈련 받았고 1965년, 마이클이 잭슨 브라더스 밴드에 합류하며 형 저메인과 함께 리드 보컬을 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밴드 이름을 잭슨 파이브로 바꿨다.

마이클 잭슨의 연인, 리사마리, 데비로우 2

마이클은 아버지 조지프와 관계가 좋지 못했는데 아버지의 엄격한 훈련으로 자신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 것은 인정했지만 아버지의 학대는 육체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큰 고통이었다고 나중에 하소연하였으며 아버지 조지프는 2003년 마이클을 정기적으로 학대했었다고 시인했다.

그의 집중적인 예술적 발전은 잭슨파이브 밴드와 솔로 활동을 통해 계속되었는데 1982년 “Thriller”라는 앨범을 통해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하지만, 최고의 슈퍼스타로 활동중 가정사와 사생활외에 좋은 일과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여름 마이클 잭슨은 13세 남자 성추행 혐의 기소는 잭슨의 상업적 매력과 음악적 명예, 대중적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잭슨을 후원하던 펩시콜라는 협력 관계를 종료했으며 모든 홍보 활동을 중단시켰다. 마이클의 팬들은 펩시 보이콧으로 이에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 사건은 마이클에게 큰 고통과 엄청난 마음에 큰상처을 안겨줬으며, 심각한 불면증을 겪고 약물에 의존하게 된다. 당시 친하게 지내며 연인관계였던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마이클이 잠을 거의 자지 못했고 통증으로 인해 약물에 크게 의존하여 심각했다고 한다

1994년 5월 잭슨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Lisa Marie Presley,1968.02~2023.01 )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결혼한다.


리사 프레슬리는 미국의 가수 및 배우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프레슬리의 외동딸이다. 마이클 잭슨은 두 번째 남편이었다.


첫 번째 남편 뮤지션 대니 키오(Danny Keough)인데 1988년에 결혼하였지만 1994년에 이혼하였으며 대니 키오와의 사이에서 딸 배우 라일리와 아들 벤자민이 있다.

리사마리 프레슬리 이미지 사진

마이클과 리사는 1975년부터 만나왔으며, 매우 긴밀한 관계였는데 이 둘의 결혼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시 미국의 전설적 가수이자 많은 사랑을 받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 마이클 잭슨과 결혼한다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마이클이 자신의 실추된 이미지 회복을 위해 리사 마리 프레슬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악의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마이클과 리사는 결코 그렇지 않으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해당 논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연인관계였음이 밝혀져 루머임이 드러났다.


이후, 같이 뮤직비디오 You Are Not Alone에 출연도 했고 시상식등 다양한 공개 행사에 함께 참석하며 인터뷰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대중들 앞에서 자주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둘의 결혼생활은 쉽지 않았다. 둘 다 매우 대중적인 인물이어서 그들의 결혼은 미디어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관심은 둘의 결혼생활에 큰 부담을 주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으나 대중들의 관심은 사생활 침해로 이어져 바쁜 일정에 따른 시간적 압박이 가정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마이클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반면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리사간의 문화적, 인종적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의 짧은 결혼 생활은 관심 받은 만큼이나 작은 행동에도 비판과 압박으로 둘러싸여 결국 2년후인 1996년에 이혼하게 된다.

리사는 이혼 후에도 2005년까지 잭슨의 투어에 동행하고 연락을 주고 받으며 인연을 이어갔고, 1993년의 성추행 논란에 관해 마이클을 옹호하기도 했으며, 마이클의 사망 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마이클 잭슨뿐이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리사는 2002년 니콜라스 케이지와 세번째 결혼을 했으나 100일 만에 이혼 발표하였고 이혼 소송에 시간이 걸려 실제 이혼은 2004년에 이뤄졌다. 이혼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네 번째 남편은 기타리스트 마이클 락우드로, 2006년 결혼하여 2008년 쌍둥이 딸 핀리와 하퍼를 출산하였고 2016년에 이혼했다.

2. 두 번째 연인 데비로우(Déborah Jeanne Rowe)


2023년 1월 10일, 제8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아버지 엘비스에 관한 영화 ‘엘비스’를 응원하기 위해 어머니 프리실라와 함께 참석하였다. 이틀 후인 1월 12일 복통을 호소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마이클 잭슨이 1984년 1월 펩시콜라 광고촬영을 위한 준비중 화상을 입어 백반증으로 인해 피부과 치료를 받았는데 피부과병원에서 마이클을 돌 본 간호사가 데비였다.

당시 데비는 마이클의 열렬한 팬이었고 간호에 진심으로 충실하면서 둘은 가까워졌다.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갖고 지내던 중 사랑에 빠졌으며 리사마리와 이혼한 후 1996년에 호주시드니에서 결혼식을 한다.

마이클과 데로우의 아이들과의 사진

이후 데비 로우는 마이클의 비공개적인 비즈니스 담당자로서도 활동하였으며 그들 사이에서는 두 명의 자녀인 파리스 잭슨(Paris Jackson,1998)과 프린스 마이클 잭슨(Michael Joseph Jackson Jr.1997~)이 태어난다.


(*2002년에는 세번째 자녀 프린스2 마이클(Prince Michael II / Blanket / Bigi Jackson.2002~)이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마이클 잭슨과 데비 로우는 순수하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서 서로 결혼했으나 대중은 그들의 의중대로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서로는 결혼 전부터 친분을 쌓아왔지만, 그들은 직업의 다름에 따른 생활 및 가치관의 차이로 결혼 생활에서 갈등과 어려움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마이클 잭슨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로서, 음악적인 업적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과 기대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도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사생활은 의도와 달리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대중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한 비판 및 몰카 등의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게 되면서 부부만의 소통 부족으로 인해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부부 간에 갈등과 분쟁이 생기게 되고, 이후 자녀 양육 문제까지 발생되면서 결국, 결혼 3년 만인 1999년에 이혼하게 된다.

데비로우의 그밖의 그녀의 행동은 크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자신의 개인 생활에 초점을 맞춰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비교적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즐기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마이클과 관련된 활동은 주로 자녀들과의 연결 및 소통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건강 문제를 겪은 후 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복지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일부 사회 활동과 음악 및 연예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3. 마이클의 다른 연인 부룩쉴즈

    데비외에 마이클 잭슨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브룩 쉴즈라는 1980년대에 특히 유명한 배우 및 모델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과 브룩 실즈는 서로를 친구로 여기고 지내며, 1980년대부터 굳은 우정을 형성했

    데비외에 마이클 잭슨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브룩 쉴즈라는 1980년대에 특히 유명한 배우 및 모델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과 브룩 실즈는 서로를 친구로 여기고 지내며, 1980년대부터 굳은 우정을 형성했다.


    그들은 많은 사진에서 함께 등장하며,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마이클 잭슨과 자주 함께 출현하거나 공개 행사에서 손을 잡아 보이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과 브룩 쉴즈


    둘의 관계는 동료 관계와 친구 관계를 넘어서서 연인이었다고 오프라 윈프라와의 생방송인터뷰에서 발언했으나 2023년 부룩쉴즈가 한 인터뷰에서 마이클잭슨이 자신과의 관계에 대하여 거짓말을 했다며 자신과 마이클은 신체 접촉없는 그저 친구였을 뿐이라고주장했다.
    당시 이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그 중 하나는 “Liberian Girl” 이라는 뮤직 비디오에 마이클 잭슨의 함께 출연하기도 해 화제가 되었던 적도 있다.

    4. 마이클에 영향을 준 여인들

    마이클 잭슨은 음악활동에 있어서 여러 여성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다양한 분야의 여성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나 그들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음악적 스타일과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에 기여하였는데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스테파니 밀즈(Stephanie Mills),마돈나(Madonna)가 있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부터 이성 관계가 아닌 선배 흑인 뮤지션으로서의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와 함께 Motown 레코드에서 활동하며 그녀의 큰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마이클을 자신의 솔로 앨범에서 소개하고 지원하는 등, 마이클 잭슨의 성장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이클의 형 저메인 잭슨(Jermaine LaJaune Jackson)의 장모이기도 하다.

    또 마이클 잭슨 누나인 자넷 잭슨(Janet Jackson)은 가수이면서 동생 마이클에게 춤, 보컬, 공연 등 다양한 면에서 도움을 주었으며,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서로를 향한 예술적인 동기부여를 이끌어냈다.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마돈나와는 연애설도 있어 많은 미디어와 팬들 사이에서 주목받았으며, 구체적인 증거나 공식 발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과는 오랫동안 친구로 긴밀한 연결 특별한 유대감과 우정이 형성이 되어 있으면서 음악적인 협업을 하기도 했고, 음악적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지지하는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마돈나  이미지

    그러나 가장 큰 영향은 마이클잭슨의 어머니인 캐서린 잭슨이 아닐까한다.
    캐서린은 마이클 잭슨과 그의 형제들을 위해 가정을 돌보고 지원하는 엄마로서의 역할과 “Jackson5”라는 음악그룹으로 활동하는 아이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고 음악적 발전과 예술적 업적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마이클 잭슨의 사생활 문제와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캐서린은 자신의 아들을 지지하고 변호하는 큰 역할도 수행했으며 마이클 잭슨의 사망 후에도 손자들인 프린스, 파리스, 블랭크트와 함께 살며가족 관계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머니인 캐서린은 항상, 평생 자식인 마이클을 지지하고 동정하고 사랑했다.
    마이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한 명으로, 마이클잭슨이라는 슈퍼스타를 만들고 키운 위대한 어머니인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대표곡 중 하나인 Heal The World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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