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리아 칼라스가 회상하는 라이벌, 레나타 테발디
나(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1977)는 이 시대의 소프라노로서, 내 이름은 오페라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단지 노래만으로 기억하진 않는다. 나와 레나타 테발디(,Renata Ersilia Clotilde Tebaldi, 1922~2004)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라이벌이었다.

처음부터 라이벌이 될 운명이었을까?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고, 결국 같은 무대에서 빛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우리를 비교했다. 그들처럼, 우리도 서로 다른 빛을 발하는 별이었지만, 결국 같은 하늘 아래에 있었다.
레나타와 나는 20세기의 최고의 소프라노로 불렸다. 그녀의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의 굵고 독특한 목소리는 또 다른 매력을 대중들에게 선사했다.
우리 집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엄마는 레나타의 서정적인 목소리를 좋아했지만, 나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더 사랑했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고, 내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반면 레나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오페라에 빠져있던 시기,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었다.
엄마에게 레나타와 나는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레나타와 나는 외모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나는 차갑고 강렬하며 화려한 인상을 주었고, 레나타는 고급스럽고 차분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현재의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처럼, 우리는 각자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레나타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고난을 겪었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긴 아이였고, 레나타는 소아마비로 고생했다. 우리는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어머니의 강력한 서포트 덕분에 성악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역으로 노래하며 형성된 라이벌 구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녀의 대역으로 스칼라 극장에 처음 서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운명적인 라이벌이 되었다.
우리의 삶은 달랐지만, 결국 비슷한 길을 걸었다. 나는 루머와 오나시스와의 만남등의 가십, 이러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살았고, 레나타는 은퇴 후 대중에게서 멀어졌다.
그녀는 언제나 ‘마리아 칼라스의 라이벌’이라는 수식어로 불렸다. 그러나 우리는 말년에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레나타가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Adriana Lecouvreur)’의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을 때,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경쟁하는 라이벌이 아니었다. 우리는 외로움과 화려한 삶의 이면을 공유하는 친구였다.

내 삶은 오나시스와의 이별 후 쓸쓸하고 외로웠다. 레나타도 강아지 뮤와 하녀 티나와 함께 쓸쓸한 삶을 살았다. 우리의 삶은 화려했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외로움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무대에서 빛나고, 그 무대 뒤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나, 마리아 칼라스, 그리고 레나타 테발디.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남겼다.
남겨진 레나나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 이글은 마리아와 레타나의 심중을 추측하여 재구성한 것임을 참고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