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린 먼로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마를린 먼로의 죽음: 할리우드의 전설이 남긴 미스터리

마를린 먼로는 할리우드의 아이콘이자, 20세기 가장 매혹적인 여배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죠. 그녀의 죽음은 여전히 많은 의혹과 미스터리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글에서는 마를린 먼로의 죽음에 얽힌 여러 가지 의혹과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마를린 먼로의 갑작스러운 죽음

1962년 8월 5일, 할리우드의 아이콘 마를린 먼로가 신경안정제 바르비투르산염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를린의 나이는 고작 36세. 빛나는 스크린의 전설이 사라지자, 세상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관 사무소는 그녀의 죽음을 “아마도 자살”로 판결했지만, 그 이후로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를린 먼로의 사진

사람들은 마를린 먼로의 죽음이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와의 불륜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시작했습니다.

먼로는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으며, 케네디 형제와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사생활이 엉망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기자 회견을 열어 케네디가와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2. 케네디 가문과의 복잡한 관계

그녀와 JFK의 불륜은 1962년 5월 19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대통령의 생일 파티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먼로는 대통령을 위해 감미롭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고, 이는 그녀의 불행한 종말이 있음을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이 공연 후, 케네디와 함께 찍힌 희귀한 사진이 2011년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마를린 먼로의 죽음의 원인이된 케네디가 형제들을 만난사진 2011년 처음 공개되었다.

전기 작가 제임스 스파다(James Spada)는 “마를린 먼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20세기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말하며, 케네디 가문이 그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녀가 두 형제와 성적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3. 불륜의 시작과 그 여파

스파다에 따르면, 배우 피터 로퍼드(Peter Lawford)는 1954년에 먼로를 JFK에게 소개했으며, 나중에 케네디가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자 동생인 로버트에게 넘겼다고 합니다.

그날 밤, 먼로의 집에서 도청된 테이프에는 로퍼드, 화난 바비(로버트 케네디),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먼로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983년 BBC의 인터뷰에서 먼로의 전직 가정부 유니스 머레이는 “그녀가 머리를 손으로 가르키며 ‘아, 왜 이런 사실을 계속 덮어야 하죠?’라고 말하는 순간이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이런사실이 바비 케네디와의 불륜 관계를 암시하며, 바비가 8월 4일에 그녀의 집에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존 F 케네디와 마를린 먼로의 사진

전기 작가 서머스는 “법의학 작업과 경찰 조사 모두 절망적으로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결성된 소위 마를린자살 조사부는 머레이, 홍보 담당자 패트 뉴컴, 로퍼드, 그리고 케네디 가족과의 인터뷰를 하지 않고 넘어간것으로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케네디 가문과의 연관성은 더욱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사건에 가까웠던 몇몇 인물들이 조사 이후 좋은 자리로 직업을 얻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이런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스파다는 “케네디 가문은 이것이 드러나는 것을 감수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마를린이 케네디 가문과 친밀하게 관계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은폐한 것은 그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오해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친구인 토니 오페디사노는 “마를린은 대통령의 결혼 생활을 파탄시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4. 의혹의 증폭, 디마지오의 발언

“케네디 가문은 모두 여성 살인자였고, 그들은 항상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마를린의 전 남편이었던 조 디마지오(Joe DiMaggio)가 한 이 충격적인 발언은 당시 마를린 먼로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그는 “나는 항상 그녀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이 나라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이며, 먼로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뒤늦게 말하며 털어놓았습니다.

약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디마지오의 비겁함이 한번 더 드러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디마지오는 먼로가 케네디 가문과의 관계로 인해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들은 내 불쌍한 멀린에게 그랬어요.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하며, 케네디 형제들이 마를린 먼로의 죽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습니다.

5. 새로운 증거와 다큐멘터리

2022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The Mystery of Marilyn Monroe: The Unheard Tapes>에서는 마를린 먼로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전례 없는 녹음테이프가 공개되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수사 기자 앤서니 서머스가 녹음한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에 따르면 1962년 8월 4일 로버트 케네디는 먼로의 집을 방문하여 불륜 관계를 끝내려 했고, 이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마를린 먼로의 모습

서머스는 “나는 마를린 죽음의 상황이 의도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결론지으며, 대통령이라는 고위직책인 케네디 형제 때문에 은폐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로가 살해당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먼로는 두 남자에게 버림을 당했다고 느꼈고, 그날 밤 약을 너무 많이 삼켰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발을 뺏습니다.

또한, 다른 사실로는 경찰관이자 사립 탐정인 프레드 오타시는 공개되지 않은 조사 파일을 통해 먼로와 케네디 가문의 불륜 관계를 확증한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케네디가 먼로와의 성적 관계를 도청하기 위해 설치한 장치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었고, 그날 아침 로버트가 그녀와 성관계를 갖고 떠났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오타시는 “바비 케네디가 그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그녀가 로퍼드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전화를 걸어 여러 차례 작별 인사를 했다는 사실도 전했습니다.

한마디로 마를린 먼로의 죽음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결론입니다.

마를린 먼로의 무덤, 로스엔젤레스 웨스트우드 메모리얼 파크

마를린 먼로의 죽음과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연애담을 넘어, 권력과 사랑, 그리고 비극이 얽힌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며,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그 시대의 권력과 음모가 얽힌 복잡한 사건으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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