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연인 클라라의 만남과 그들의 사랑, 그리고 음악
슈만의 연인 클라라 비크와 로베르트 슈만의 이야기는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그들의 만남은 두사람의 음악적 재능과 함께 깊은 감정이 얽힌 아름다운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연인들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슈만과 클라라의 첫 만남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 6. 8 ~ 1856)은 독일의 작센 왕국(현재의 독일 중부) 츠비카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멘델스존과 함께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독일의 19세기 음악의 중요한 작곡가로 인정받았으며, 평론과 저술활동을 통해 많은 음악가들에게 도움을 준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슈만은 사람의 영적 삶과 심오한 마음의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감정과 경험을 전달했습니다.
2. 슈만과 클라라의 만남
슈만의 어린 시절은 집안의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예술적 감성이 그의 작곡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슈만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시절 운명적으로 클라라를 만나게 되는데, 음악적 감성과 재능이 뛰어난 그들이 어떻게 만났을까요?
음악가정에서 태어난 클라라 죠세피네 비크 (Clara Josephine Wieck, 1819~1896)는 1828년 10월 28일, 단 9세의 나이에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연주자로 공식 데뷔를 했습니다.
그녀의 연주는 이미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고, 그 해에 콜디츠 성의 정신병원장 에른스트 카루스의 집에서 공연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클라라는 운명적으로 또 다른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 로베르트 슈만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18세의 슈만은 클라라보다 9살이 더 많았으며, 첫눈에 반한 그는 클라라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아 어머니에게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클라라의 아버지에게 음악 레슨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하게 됩니다.
클라라를 보고 첫눈에 반한 이들의 운명은 슈만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후, 슈만은 비크 가정에서 약 1년을 함께 살며 클라라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됩니다.

3. 슈만의 연인, 클라라와의 사랑의 시작
시간이 흐르면서 슈만은 클라라에게 점점 더 매료되었고, 1836년 1월,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고백하게 됩니다.
1837년, 클라라가 만 18세가 되었을 때, 슈만은 드디어 클라라에게 청혼하였고, 클라라는 이를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는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슈만의 불안정한 직업적 미래와 클라라의 경력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로 두 사람의 결혼을 강력하게 반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두 사람이 아니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법적인 절차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결혼의 허락을 받으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은 클라라의 아버지와 법정에서 싸움을 벌여 클라라의 21세 생일 전날인 1840년 9월 12일,결혼 허가를 받게 됩니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거였습니다.
비온 뒤에 땅은 더 굳게 되는 법, 아버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됩니다. 둘은 결혼 후, 함께 음악적 작업을 하며 서로의 음악적 경력을 보완하고 지원하게 됩니다.
클라라와 결혼을 한 1840년은 슈만의 창작에 있어 중요한 해로, 그는 클라라와의 결혼의 기쁨을 바탕으로 많은 곡들을 작곡합니다.
특히, 「여인의 사랑과 생애」와 「시인의 사랑」 등의 작품은 클라라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담고 있습니다.
또 이 시기에 슈만은 138곡의 가곡을 작곡하며, 클라라와의 음악적 협력은 그의 예술적 성장을 더욱 빛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4. 음악적 동반자, 요하힘과 브람스의 등장
클라라 또한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을 쌓으면서 슈만의 음악적 파트너로서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함께 성장했습니다.
1844년, 두사람은 14세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클라라는 요아힘의 연주에 매료되어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클라라의 음악적 성장에 한 몫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음악적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되며 서로에게 음악적 자극을 주며 동반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운명적인 1853년, 젊은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슈만 부부를 찾아오게 됩니다.
브람스는 슈만 부부에게 자신의 작곡을 선보이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슈만은 그의 재능을 극찬하게 됩니다. 클라라는 브람스를 신의 사자로 묘사하며 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5. 클라라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
그러나 슈만의 삶은 우울증과 정신병으로 얼룩지게 됩니다.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마지막 몇 년 동안, 슈만의 음악적 친구이자 후배인 브람스는 슈만 가족에게 중요한 존재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강한 애정의 감정을 품고 있었으며, 그들의 관계는 우정과 사랑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음악적으로 존경하기도 했지만 이성으로 그를 흠모했습니다.
반면 슈만은 정신적 착란증으로 음악 활동이 어려워졌고, 결국 지휘자로서의 경력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와의 연주 여행을 계속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슈만의 정신병은 재발하여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되었고, 1856년, 결국 라인 강에 몸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겨우 구조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했지만 그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며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1856년 7월 29일 46세의 젊은 나이에 슈만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클라라와의 사랑은 슈만의 생애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그의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이 존재했습니다.
브람스의 등장과 그에 대한 클라라의 애정의 감정은 복잡하게 얽혔지만, 클라라는 슈만의 음악과 유산을 지키며 음악가로서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브람스의 도움도 크게 작용합니다.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서로의 음악적 재능을 존중하고, 결과적으로 서로의 음악을 발전시킨 진정한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는 음악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서로를 어떻게 지탱해 줄 수 있는지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도 남아 있습니다.
6. 클라라와 브람스를 남기고 떠난 슈만과 그의 첫 사랑
슈만은 사랑하는 아내 곁에 브람스라는 연적을 남기고 정신병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슈만은 브람스가 그의 연적이었는지를 알고 세상을 떠났는지는 확실치는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슈만에게 사랑이 클라라 비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클라라를 좋아하기 전, 에르네스틴이라는 여성과 약혼까지 한 경력이 있습니다.

슈만은 1830년대 초, 스무 살의 나이에 에르네스티네 폰 프리켄(Ernestine von Fricken)이라는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클라라 비크의 동료 학생이자 플루트 연주자였습니다. 이들은 사랑에 빠져 비밀리에 약혼까지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슈만은 에르네스티네의 성격과 탄생 배경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실망한 슈만은 그녀에 대한 애정 감정이 시들해지게 되었지요.
에르네스티네는 프리켄(Fricken)의 사생아이자 가난한 집안에서 입양한 입양 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슈만을 실망하게 했습니다.
결국 슈만은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게 되었고 약혼도 없었던 이야기가 되 버렸습니다. 이런 이유가 전부라면 슈만은 출세 지향적인 인물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실망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