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로드 드뷔시의 연인(2/3), 릴리 텍시에
끌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달빛>이라는 서정적인 작품과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그리고 자포니즘의 동양풍 <바다>로 유명하다. 프랑스 태생의 작곡가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러시아 음악과 동양 음악의 활용하며, 본인만의 음악을 추구한 혁신적인 음악가이다.
음악적으로는 높이 평가를 받지만, 이성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아주 개차반으로 평가받는 못된 난봉꾼으로 후대에 알려진다.
드뷔시는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귀공자풍의 외모로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던 드뷔시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1편에서 살펴본 유부녀 마리 바스니에부인과의 헤어짐을 뒤로하고 20대 초반의 젊은 갸비 뒤퐁과의 만남도 그의 여성에 대한 난봉본색에 자살소동을 겪게 된다.
갸비와 드뷔시, 둘의 사이가 소원해진 사이에 한 여인이 드뷔시의 마음속 깊이 들어온다. 드뷔시는 그녀를 마음속에 두고 1899년에 갸비(가브리엘 뒤퐁)과 공식적으로 헤어진다.
그런데 드뷔시의 마음속에 들어온 그녀가 애를 태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으로 본인을 거부한 여인이 없었는데 그녀가 쉽게 넘어오질 않는 것이다. 이미 가브리엘과는 공식적으로 헤어진 다음인데도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앞서 드뷔시와 10 년간 동거했던 가브리엘 뒤퐁과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드뷔시가 얼마나 형편없는 남자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 로잘리에 텍시에(Lily)였다.
1. 드뷔시와 가브리엘 뒤퐁의 친구 릴리 텍시에와의 만남
릴리(Lily)라고도 불리우는 마리 로잘리에 텍시에( Marie-Rosalie Texier)는 드뷔시 보다 열 살 아래의 양품점 점원이었고 1899년 봄에 처음 만났다.
그들의 만남은 드뷔시의 연인이었던 갸비 뒤퐁을 통해서 만났는데, 드뷔시의 눈에는 눈부시게 아름답게 보였다고 한다.
나중에 드뷔시는 릴리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예뻤습니다. 마치 오래된 전설에 나오는 인물 같았어요.”
드뷔시는 아주 과격하게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면 죽어버리겠다’는 표현을 써가며 3개월 동안 그녀에게 열렬한 구애를 보냈다. 그러나 릴리는 드뷔시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이미 갸비와의 사이를 지켜본 릴리로서는 드뷔시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그의 타고난 바람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뷔시는 자신의 과격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꼼짝도 하지 않은 릴리에게 점점 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전을 달리했다. 릴리의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대로 혼자 고독하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이제는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여자를 못 만났지만 당신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그 사람이다.” 등등, 애절한 사랑의 내용을 담은 편지를 릴리에게 보내기 시작한다.
릴리 텍시에는 이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이 부담스러웠지만 자신과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위협에 굴복, 1899년 결국 청혼을 받아들여 10월 19일 결혼을 한다.

릴리는 드뷔시를 헌신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했다. 드뷔시의 바람기를 익히 보아온 터라 그의 사생활을 주의 깊고 질투심 있게 감시하고 보호하며, 그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데 만족하면서 3년 동안 행복을 누렸다.
모든 면에서 릴리는 다정하고 솔직한 여인이었으며, 실용적이며 확실하여 드뷔시의 친구와 동료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 중에 드뷔시는 관현악곡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성공시켰고 연이어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상드>를 발표해 절정의 명성을 구가하게 된다.
인기와 명성을 차지한 드뷔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그림자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 릴리에 만족하지 않고 한눈을 판다.
그리고 1903년이 되자 릴리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데다 나이가 30살이 넘어가자 목소리와 웃음이 날카로워지고, 턱살이 발달해 갔으며 점점 암사슴처럼 변해간다며 릴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릴리의 지적인 한계를 불만 삼는다. 그러나 릴리는 양품점 점원과 음악가인 본인과는 살아온 과정이 다르지 않은가. 이는 그동안의 드뷔시의 바람기를 감안하면 어디까지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여인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2. 릴리의 권총자살 소동과 유부녀 엠마와의 만남
1903년 10월 1일 그는 은행가 지기스몽 바르닥(Sigismond Bardac)의 부인 엠마 바르닥을 처음 만나게 된다.
지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드뷔시의 이상형인 바르닥 부인은 세련된 매너와 교양을 갖춘 데다 수준급 성악가이기도 했다.
1904년 그는 릴리 텍시에 몰래 바르닥 부인과 프랑스 북서부 저지(Jersey)섬으로 밀월여행을 가게 된다. 바르닥 부인과 여행을 다녀온 후 친정에 가 있던 텍시에에게 편지로 이혼을 통보한다.
결혼을 안 해주면 자살하겠다고 릴리를 협박하던 그가 불과 5년 만에 릴리를 배신한 것이다. 릴리는 바람을 피우는 드뷔시에 권총으로 자살하겠다고 이미 수차례 협박을 했지만 그의 타고난 바람끼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혼 5주년을 5일 앞둔 1904년 11월 14일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릴리는 권총 자살을 감행했다. 총탄은 릴리의 가슴 속에 박히긴 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녀는 자신을 배신했던 남편에게 자살로 복수하려 했던 것이다. 이 기막힌 치정사건은 언론을 요란스레 장식했고 프랑스 사회에 큰 파문이 일어난다. 이미 드뷔시는 유명한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총알은 릴리의 척추뼈에 박혀 있다. 총알은 드뷔시와의 사랑의 징표로 릴리와 영원히 함께 하고 있으며 1932년 사망했다.
그런 릴리와의 권총 소동을 일으키고, 1905년 봄 그들은 영국으로 도망쳐 이혼을 마무리했다, 엠마는 5월 4일에, 드뷔시는 8월 2일에 릴리와 이혼했다. 엠마 바르닥은 이미 임신 중이었고 1905년 드뷔시의 딸 슈슈(Chouchou)가 태어난다.
릴리 텍시에는 뒤퐁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택할 만큼 드뷔시를 사랑하고 또 증오했다. 자신의 친구였던 갸비 뒤퐁과 헤어지는 과정에서의 드뷔시의 행태를 똑 같이 당했고, 그녀의 척추뼈에는 드뷔시의 사랑의 징표를 남겨뒀다.
아는지 모르는지 드뷔시의 애정 행각은 점입가경이다. 드뷔시의 본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편에서는 못된 난봉꾼 드뷔시의 마지막 여인열전과 그의 대표작품 <바다>에 대해서 알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