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로드 드뷔시의 연인, 마리 바스니에부인과 가브리엘 뒤퐁과 연애, 그 첫번째 이야기.
끌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프랑스의 작곡가로,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혁신적인 음악가이다. 우리에겐 <달빛>이라는 작품과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으로 유명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을 중심으로, 러시아 음악과 동양 음악의 특징까지 활용하며, 본인만의 음악을 추구한 위대한 음악가이다.
드뷔시는 음악적으로는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이성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아주 더러운 저질로 평가 받는 못된 난봉꾼으로 후대에 알려진다.
드뷔시 자신도 여자를 좋아했지만, 여인들이 그를 더 좋아할 정도로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드뷔시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잘 생긴 외모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부잣집 도련님, 귀공자 같은 인상을 가진 그였다.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1862-1918)는 파리 북서쪽 변두리에 도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 파리의 포위망을 피하기 위해 칸느(Cannes)에 있는 외숙모의 집에서 대피했었는데, 드뷔시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드뷔시의 타고난 재능은 곧바로 드러났고, 1872년 10세의 나이로 파리 음악원에 입학, 11년 동안 음악공부를 했다.

1.드뷔시의 첫 연인, 마리 바스니에 부인
드뷔시는 무척 반항적인 학생으로 피아노를 배운 지 2년 만에 음악원에서 재능은 눈에 띄게 특별했다.
파리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1880년, 그는 마르몽 텔 교수의 추천으로 차이콥스키의 후원자인 나데즈다 폰 메크의 집에서 피아니스트로 취직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1882년까지 여름 휴가 동안 폰메크 가족과 함께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의 여러 곳과 여행하면서 모스크바에 있는 그녀의 집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이성에 눈을 떴는지 겨우 열다섯 살인 폰 메크 부인의 딸 소냐에게 반해, 소냐의 어머니 폰 메크부인에게 결혼하게 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사랑 방식이 본격적으로 본성을 드러낸 것은 파리에 돌아와 마리 모로 생티((Marie Moreau-Sainti)의 피아노 반주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드뷔시는 1882년 성악수업에서 마리 바스니에 (Marie Vasnier,1848~?) 부인의 노래 반주를 맡게 됐다. 당시 서른네 살이었던 바스니에 부인은 빼어난 미모에 성악에도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드뷔시는 자신에게 자상하게 다가선 바스니에 부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바스니에 부인은 드뷔시의 마음을 흔들어 놨다.
부인도 이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스무 살 청년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바스니에 부인은 곧 드뷔시의 연인이자 뮤즈가 되어버리고 만다.
드뷔시는 성악 레슨의 반주자로 고용되었으나, 바스니에는 그에게 사랑의 기술을 가르쳤다. 상당한 나이 차이를 감안할 때, 8년 간의 관계에는 중요한 모성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마리 블랑쉬는 그에게 옷 입는 방법부터 세상의 사는 방식을 가르쳤다.
드뷔시의 어머니이자 연인이었던 그녀는 그를 문학의 깊은 세계로도 인도했고 드뷔시의 수많은 사랑의 음악에도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고위 공무원이었던 그의 남편 앙리 바스니에는 드뷔시를 그들의 저택에 자주 초대하여 함께 지내기도 했고, 나중에는 드뷔시에게 피아노가 딸린 연습실까지 제공하며 드뷔시를 경제적인 부담에서 벗어나게 까지 해준다.
2. 드뷔시의 로마유학과 바스니에부인과의 헤어짐
나중에 바스니에와 젊은 청년 드뷔시와의 관계를 알게 된 앙리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앙리와 바스니에 부인과의 나이차이와 고위 공무원인 본인의 체면도 있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와 같은 둘 간의 사실을 알고도 앙리는 드뷔시와의 관계를 좋게(?) 유지했다.
앙리와 폰메크부인은 문제를 확대하지 않고 드뷔시가 음악가로 대성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드뷔시가 작곡가로서 경력을 계속하도록 배려(?)하는 호의를 베풀었던 것이다.
폰메크 부인은 깊은 음악적 조예를 갖고 차이코프스키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등, 재능있는 음악가를 도왔으며,당시 많은 음악가가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
드뷔시의 음악은 독특했다. 파리음악원에서의 드뷔시는 작곡의 정통규칙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진으로부터 배척을 받았지만, 앙리 바스니에의 경제적인 후원 덕분에 1884년 프랑스예술원 콩쿠르에 응모해 당당히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 22살 때의 일이다.
콩쿠르에서의 입상은 드뷔시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드뷔시는 바스니에의 남편 앙리의 주도에 의해 로마 유학길에 오르게 됨으로써 바스니에 부인과 떨어지게 된다.
바스니에 부인의 사랑도 드뷔시에게서 멀어졌는데, 이런 일련의 일들은 드뷔시의 음악적 성장도 있지만 자신의 부인과 드뷔시를 떼어 놓기 위한 앙리의 의도적인 시도였기도 했다.
그러나 드뷔시는 로마로 유학을 간 뒤에도 1887년 3월까지 가끔 프랑스에 머물렀는데 마리 바스니에 부인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1887년 드뷔시가 로마에서 마지막으로 돌아온 드뷔시와 마리 바스니에의 연인관계를 끝내기로 하지만 1890년까지 드뷔시가 그녀에게 곡을 헌정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드뷔시가 바스니에 부인에게서 눈이 멀어지게 된것은 바스니에부인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젊은 다른 여인 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드뷔시는 콩쿠르에서의 입상을 계기로 로마유학과 함께 본격적으로 음악가로서 창작 생활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3.재단사의 딸, 가브리엘 뒤퐁과의 만남
1887년 2년간의 로마유학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그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여인은 가브리엘 뒤퐁이었다
드뷔시는 갸비(Gaby)라는 애칭을 지어주며 처음으로 가브리엘 뒤퐁(Gabrielle Dupont)과 1893년께부터 동거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녹색 눈에 금발을 한 20대 초반으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이때까지는 이름이 아직까지 덜 알려진 초보 작곡가 드뷔시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했다. 그의 연인이었던 바스니에 부인과 헤어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바스니에 부인의 남편 앙리의 의도적인 로마유학길 지원 이후에는 뚜렷한 수입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단사의 딸인 가브리엘과 드뷔시는 유흥가에서 만나 충동적으로 맺어진 관계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직 초보 작곡가 드뷔시는 그렇게 가난했지만 가브리엘 뒤퐁이 있었기에 가난에 위축되지 않고 창작의 꿈을 키워갔다.
가브리엘은 내성적이고 헌신적인 여성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드뷔시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당시의 드뷔시는 관현악곡 <야상곡>을 거의 마무리하면서 ‘인상주의’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서고 있었다.
드뷔시는 지성은 없지만 순진하고 정 많은 이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듯하다. 그의 최대 걸작의 하나로 평가되는 <목신의 오후를 위한 전주곡>을 가브리엘에게 바친 것만 봐도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잘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드뷔시는 타고난 천성은 버리지 못하고 가브리엘을 만나면서도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는 작품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벨기에 화가의 딸 카르린 스테방, 로댕의 연인으로 유명한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을 만나서 염문을 뿌리는데, 그녀들은 드뷔시의 연인 목록 중 아주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었다.
심지어 1894년에는 가브리엘과 같이 살면서도 여가수 테레즈 로제와는 약혼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드뷔시의 못된 행동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결국 말도 안되는 테레즈와의 약혼은 파기되었다.
갸비는 재단사의 딸로 엉겁결에 드뷔시를 만나 동거를 하게 되었지만, 지성과는 거리가 멀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예쁜 미모로 드뷔시를 사로잡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드뷔시의 바람기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의 만남은 예상보다 길었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리는 드뷔시를 꾹꾹 참으며 애써 평상심을 유지하였는데,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뒤뷔시가 다른 여자한테 구애를 하는 편지를 드뷔시의 주머니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참기 어려웠는지 결국 권총자살을 기도한다. 1897년의 일이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리고 권총 자살사건 이후에도 이들은 약 2년 정도 동거를 했지만 이들의 사랑은 1899년 마침내 헤어지게 된다.
뒤퐁은 죽음을 택할 만큼 드뷔시를 사랑하고 또 증오했다. 뒤퐁과 헤어진 다음부터 드뷔시의 애정 행각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드뷔시의 이성에 대한 더러운 본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며 뭇 여성들과의 만남이 펼쳐진다.




